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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누가 여당 대표에게 개헌 방향 지시할 권한을 줬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정기국회 이후 개헌 논의 불가피'란 지난주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이라는 시점상 자신의 발언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 자체의 철회는 아니라는 것이 정가의 일치된 분석이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개헌 논의가 없기를 바란다"는 그의 해명은 결국 개헌 논의 시점을 정기국회 이후로 미룬 것일 뿐이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지게 된다"는 발언과 표현만 다를 뿐 의미는 같다.

문제는 김 대표가 개헌의 방향을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로 사실상 못박았다는 점이다. 이원집정부제란 직선제로 뽑힌 대통령이 국방과 외치를 담당하고 국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내치를 맡는 제도이다. 권력이 대통령과 총리에게 분산된다는 점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줄여야 한다'는 개헌론자들의 명분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 맞는지 여부는 아직 깊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 대표가 개헌의 방향을 이원집정부제로 못박는 것은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는 자기만의 생각이자 오만이다. 개헌은 단순히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좌우하는 중대사이다. 그렇다면 지금 개헌이 과연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방향의 개헌이어야 하는지를 놓고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 과정을 당연히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제기될 것이다.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그런 의견 중의 하나일 뿐이다. 누가 김 대표에게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지시할 권한을 줬다는 말인가.

개헌이 필요한지 자체부터 의문이다. 개헌론자들은 개헌의 이유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내세우지만 지금 국회 권력은 대통령의 권력을 훨씬 능가한다. 문제는 대통령 권력이 아니라 국회의 권력이란 얘기다. 야당의 '세월호특별법 투쟁'은 국회가 마음만 먹으면 정부를 그리고 국가를 얼마든지 마비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총리를 선출할 경우 국회 권력은 더 무소불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시급히 필요한 것은 국회 권력의 제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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