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중학생 때 시내 영화관에서 '잔 다르크'(1948년 작)를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중'고등학생들은 중간'기말고사가 끝나면 '문화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단체 영화관람을 했는데, '잔 다르크'도 그때 본 영화 중 하나였다. 그렇게 기억이 오래 남아있는 것은 '잔 다르크' 역을 맡은 여주인공이 잉그리드 버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카사블랑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청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준 이 배우는 신앙심 넘치는 성녀(聖女)의 모습을 품위있게 재연했다. 최근에도 선머슴 같은 강인한 이미지의 밀라 요보비치가 주연한 '잔 다르크'(1999년 작)를 봤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초한 눈빛과는 비교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잔 다르크'는 미국, 프랑스에서 영화만 12편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위대한 영웅이지만, 1920년 교황청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되기 전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혁명가' '편협한 광신자' '엘리트계급에게 버림받은 시골처녀' '페미니스트의 선구자' 등으로 평가가 갈리기도 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조국을 구한 성녀'라는 이미지 하나뿐이다.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 시절 "난 잔 다르크처럼 나라를 구하는 소녀가 될 테다. 누구나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열사는 그 뜻을 굽히지 않고 18세의 나이에 순국해 3'1운동의 상징으로 영원히 남아 있다.
국민들은 여성 정치인에게서 '잔 다르크' '유관순' 이미지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부패하고 싸움질만 하는 남성 정치인 대신에, 여성이 나라를 구하고 조국을 부강시켜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한때 '잔 다르크' 칭호를 듣곤 했다. 2004년 천막당사를 지키며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한나라당을 구한 잔 다르크'로, 2년 전 대선 때에는 보수세력들에게는 '좌익의 수렁에서 대한민국을 구원할 잔 다르크'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박 대통령은 '잔 다르크' 이미지와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저질언론'으로 불릴 만한 산케이신문 지국장과의 법정공방이나, 비선 실세 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방식은 대단히 유치해 보인다. 고소장'검찰수사 남용을 통해 정권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정치행위 중 최하책이다. 서민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없는데 대통령과 청와대가 비생산적이고 감정적인 일에 온통 매달려 있는 느낌이다. 취임 2년이 다가온다. 한국의 '잔 다르크'가 되기에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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