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다. 거짓말로 상대를 농락한다는 뜻이지만 요즘은 진실을 호도한다는 뜻으로 더 자주 쓰인다. 중국을 처음 통일한 진(秦) 말기에 권력을 장악한 환관 조고가 어린 황제에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 거짓말에 황제가 대신들에게 묻자 조고의 위력에 눌린 대신들도 모두 말이라 답했다 한다. '십상시'(十常侍)라는 말이 유행한 올해를 돌이켜보면 딱 맞는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교수신문은 전국 교수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2001년부터 연말에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 발표해왔다. 참여 교수들의 성향인지, 아니면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엉망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번도 긍정적인 말이 없었다. 2001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중간으로 어떤 일에 대해 도무지 알 수 없음을 뜻하는 오리무중(五里霧中), 2002년은 모였다 흩어지고 모이고를 되풀이한다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우왕좌왕(右往左往), 당동벌이(黨同伐異,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다른 무리를 무조건 배격함), 상화하택(上火下澤, 모든 것이 분열함), 밀운불우(密雲不雨,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 자기기인(自欺欺人, 자신과 남을 모두 속임) 등이 잇따라 선정됐다.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이어졌다. 문제가 있어도 다른 이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호질기의(護疾忌醫), 일을 그릇되게 억지로 한다는 방기곡경(旁岐曲逕), 진실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이미 그 꼬리는 드러나 있다는 장두노미(藏頭露尾), 나쁜 짓을 하고 비난이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엄이도종(掩耳盜鐘), 아래 윗사람 모두 바르지 않다는 거세개탁(擧世皆濁) 등 웬만큼 유식해도 알기가 쉽지 않은 한자어로 한 해를 풍자했다.
그런데 그동안 선정한 말은 대부분 대통령의 실정(失政)과 직결한다. 거꾸로 보면, 대통령만 잘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희망을 역설로 보인 셈이다. 온갖 사건이 많았던 올해도 막바지다. 지록위마 대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연상되는 '삭족적리'(削足適履, 발을 깎아 신발에 맞춤)라는 끔찍한 낱말이 채택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새 아침을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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