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에 둥지 튼 사람들]②(주)엔유씨전자 김종부 대표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친해지는데 오래 걸려도 진국이잖아요…나도 대구 뚝배기!

전라도에서 온 김종부(62) 엔유씨전자 대표는 대구지역 수출 실적을 올리는 데 기여한
전라도에서 온 김종부(62) 엔유씨전자 대표는 대구지역 수출 실적을 올리는 데 기여한 '대구 수출 역군'이다. 그는 매년 수십 개국을 다니며 대구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강산이 세 번쯤은 바뀐 30년을 대구에 머무른 전라도 남자가 있다. 원액기와 믹서기, 찜기 등을 생산하는 생활가전제품 전문기업 ㈜엔유씨(NUC)전자 김종부(62) 대표다. 그는 고향인 전라북도 익산시보다 대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김 대표는 스스로를 전라도 사람이 아닌 '대구 사람'이라 부른다. 지난해에는 대구에서 수출 5천만달러 달성이라는 신화를 이루기도 했다. 대구의 어엿한 수출 역군이 된 그를 이달 7일 대구 북구 침산동에 위치한 엔유씨전자 본사에서 만났다. 툭툭 튀어나오는 대구 사투리, 무뚝뚝함 속에 묻어나오는 소탈함과 자상함이 영판 '대구 사람'이다.

◆뚝배기 같은 대구 사람 '딱 좋아!'

김 대표는 1986년에 처음 대구를 찾았다. 서울에서 '한일내셔널'이라는 상호로 믹서기와 녹즙기 등 생활가전제품을 판매하던 때였다. 당시 그는 서울에서만 3개 공장을 가동 중이었다. 그만큼 장사가 잘됐다. "내놓으면 팔리던 때였죠." 하지만 안주할 수만은 없었다. 경쟁력을 높일 '디딤돌'이 필요했다.

김 대표는 재도약의 기회를 '대구'에서 찾기로 결심했다. "대구는 1980년대 가전부품 사업이 호황을 누렸습니다. 대구에서 나오는 부품만으로도 완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1개 공장을 대구로 이전했죠." 이전은 대성공이었다. 서울보다 대구 공장의 수익성이 훨씬 좋았다, 2년 후, 김 대표는 서울 공장을 모두 대구 북구 침산동으로 이전시켰다. 서울에서 거주하던 어머니와 아내, 두 자녀도 함께 왔다. 대구살이의 시작이었다.

사실 처음엔 대구가 낯설었다. 음식과 풍습이 그를 힘들게 했다. 김치는 소금을 통째로 부은 것처럼 짰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속도도 서울보다 더뎠다. 사라진 줄 알았던 '남녀칠세부동석'도 대구에는 남아있었다. 무엇보다 어색했던 건 학연, 지연 등으로 똘똘 뭉친 '끼리끼리 문화'. 그는 대구로 내려온 후 6개월 동안은 다시 서울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이왕 내려온 거 확실한 대구 사람이 되자고 마음을 바꿨다.

그때부터 김 대표는 지역에서 동종 업종의 교류회 등에 적극 참여했다. 벤처기업 대구경북지역협회, 이노비즈 대구경북협회 등의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모임에서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려고 먼저 다가서고, 가능하면 회식자리도 자주 가졌다.

"친해지면 속에 있는 것까지 다 꺼내는 게 대구 사람이에요. 대구 사람들은 뚝배기와 같아서, 데워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진국을 만들어내죠, 이러한 특성은 사업을 할 때도 큰 도움이 됐어요," 그는 이제 어디를 가도 '대구 사람'이란 소릴 듣는다.

◆대구 속의 글로벌 기업을 꿈꾸다

김 대표는 1년에 3분의 1은 대구에 없다. 가전제품 전시회 참여를 위해 수십 개국 출장길에 오르기 때문이다. 다음 달에도 독일에서 열리는 가전제품 전시회에 갈 예정이다. 현재 엔유씨전자가 수출하고 있는 국가만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 등 50여 개국이다.

지난해 엔유씨전자의 전체 매출은 720억원. 2013년 매출 규모 520억원에서 1년 사이 무려 200억원이 올랐다. 이 중 80%가 수출에서 나온 매출이다. 지난해 12월에는 한국무역협회에서 '5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리기도 했다. 지난해 대구에서 '5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한 기업은 엔유씨전자를 포함해 2개뿐이다.

지금이야 엔유씨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불리지만, 출발은 국내시장을 주요 대상으로 한 내수기업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통망이 넓은 해외시장을 뚫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어요. 기술력과 마케팅만 갖춘다면 해외에서도 승부수를 둘 만한다고 생각했죠."

막상 대구를 근거지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려니 어려움이 많았다. 해외 바이어들이 대구에 오려 하지 않았기 때문. 거리가 멀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 대구가 서울이나 부산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도 한 원인이었다. 해외 바이어를 대구로 부르려면 회사 자체 경쟁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꾸준한 연구개발 결과, 수출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지 5년 만에 수출로 인한 매출이 50배 이상 늘었다. "이제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우리 제품을 보기 위해 대구를 찾습니다. 이만하면 대구 홍보대사죠? 하하하."

김 대표가 진단한 대구 수출시장 토양은 아직 척박하다. "얼마 전 중국 베이징에 출장 갔을 때 미팅을 마치고 만리장성을 둘러보고 왔어요. 대구도 외지 손님들이 왔을 때 둘러보고 갈 수 있는 볼거리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세계물포럼, 세계육상선수권대회처럼 국제적인 행사가 대구에서 열리는 것도 지역기업 인지도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대구시는 지역 기업인의 인큐베이터

김 대표의 든든한 사업 파트너는 '대구시 공무원'이다. 그는 사업을 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발 벗고 나서준 대구시 공무원들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기자가 대구시가 도움을 준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니 한참 생각하다 입을 뗐다. "고마운 일들이 너무 많아서 무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는 잠시 후 2년 전 일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우리 회사 기술의 방향 설정을 두고 고민하던 때였어요. 그때 지나가는 말로 대구시의 한 과장에게 '힘들어 죽겠다'고 말했더니, 며칠 후 그 문제에 대해 미팅하자며 연락이 온 거예요. 10번은 만났을 겁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꼽은 대구시에 대한 고마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해피콜' 서비스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칭찬했다. 기업이 애로사항을 털어놓으면 상담내용을 정리해서 다시 전화로 말해주는 서비스로, 이 이름은 김 대표가 지었다고 한다.

해외 전시회 참가 시 단독부스를 지원해주는 것도 지역 기업엔 큰 도움이다. 전시회 단독부스 설치에 필요한 비용은 500만~800만원. 경제적 기반이 약한 신생 기업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그는 "국제통상과나 원스톱 기업지원관에 있는 대구시 공무원들은 기업가 못지않게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 열정을 가지고 있다"며 "지역 기업들이 대구시에 문을 두드린다면 어느 도시에서보다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제 글로벌 기업으로서 첫발을 디뎠다고 했다. 그의 꿈은 오는 2024년까지 엔유씨전자를 수출 10억달러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구는 저에게 '꿈의 도시'입니다. 대구에 온 뒤 매출 향상, 경쟁력 확보 등 좋은 성과들을 많이 거뒀어요. 앞으로도 대구와 함께 노력해서 더 큰 꿈을 이룰 겁니다."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사진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출생 1952년 전라북도 익산시

▷NUC 연혁

1978년 '한일내셔널'로 생활가전제품 전문기업 출범

1986년 대구로 1개 제품공장 이전

1988년 대구로 3개 공장 모두 이전

1990년 '엔유씨전자'로 전환

▷수상내역

2014년 한국무역협회 5천만불 수출탑 수상

2014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창조기업 우수사례 선정

2005년 발명의 날 발명진흥유공자 산업훈장 은탑 수상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지지율 열세를 겪고 있는 국민의힘에서 내부 분열이 심화되고 있으며, 특히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과 대장동 사건 국정조사 요구 속에 당의 단합이 요...
정부는 원·달러 환율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과 650억달러 규모의 외환 스와프 거래를 내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기금운...
과잉 진료 논란이 이어져온 도수치료가 내년부터 관리급여로 지정되어 건강보험 체계에 편입될 예정이며, 이에 대해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50대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