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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의 한시 산책] 술을 마시며 [대주(對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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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며 [대주(對酒)]

백거이(白居易:772~846)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달팽이 뿔 위에서 무얼 다투나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인생은 스파크 불빛 같은 것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이렇든 저렇든 즐겁게 살 일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허허하하 안 웃으면 그게 바보라

*백거이: 당나라의 시인. *蝸牛角(와우각): 달팽이 뿔. 극히 좁은 공간을 말함. *石火光(석화광): 돌과 돌이 부딪힐 때 번쩍 일어나는 스파크 불빛. 극히 짧은 시간을 말함. *隨富隨貧(수부수빈): 부가 따르든 가난이 따르든.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삶이 힘겹게 느껴지던 젊은 날, 자살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던 단산못에 우연히 가본 적이 있었다. 못 둑 위에는 합판으로 만든 피켓 하나가 서 있었고, 거기 괴발개발 '삶'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다. '자살금지'라는 경고문과 함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멀지 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는 법이라네."

그날 나는 푸시킨의 이 시를 거듭하여 외우면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내 어깨를 가만가만 토닥여주었던 또 다른 시가 한 편 더 있다. 오늘 소개할 백거이의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보다시피 이 시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인식의 갱신에서 시상이 시작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덩어리는 크다고 보면 정말 크다. 하지만 거대한 우주와 비교해보면 달팽이의 뿔에 지나지 않는 것. 우리가 살아갈 인생 100년도 길다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길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 영원한 시간과 비교해보면 스파크 불빛이 번쩍하는 찰나의 순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결국 달팽이 뿔 위에서 번쩍 일어나는 스파크의 불빛처럼 사라지는 것! 이와 같은 인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면, 아등바등 다툴 게 뭐가 있으랴. 좌우간 술이라도 한잔 마시면서 허허하하 웃으면서 살 일이다.

뭐라고? 아무리 웃고 싶어도 웃을 일이 도대체 아무것도 없다고? 야 이 사람아, 우리가 어디 즐거워서 웃나, 즐겁기 위해서 웃는 거지. 아내와 바람피운 사내의 총을 맞고 죽음을 눈앞에 둔 마당에서, 푸시킨인들 설마하니 삶이 슬프지 않아서 '삶'과 같은 시를 짓기야 했겠나.

이종문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104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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