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한국인 남편의 특별한 청혼
집안 가보인 한문 편지로 프러포즈 뭉클
서로 도와주는 한국의 결혼문화가 좋아
아들 3월 결혼식에 전통 한복 입을 계획
다가오는 3월, 꽃들이 만개하는 가운데 작은아들이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결혼은 모든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8년 전 내가 한국에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 본 놀랍고 생소했던 광경들이 문득 떠오른다. 서울 시내 어느 거리였는데 길 양쪽에 빼곡히 들어선 쇼윈도에는 아름답고 기품 있는 하얀 웨딩드레스가 기다랗게 줄을 잇고 있었다. 또 경복궁을 방문했을 때에는 전통궁중을 배경으로 하얀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온갖 행복한 장면을 연출하며 미리 결혼사진을 찍는 수많은 커플을 바라보면서 어안이 벙벙해졌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 살면서 결혼식이 다양한 패키지 상품으로 구성된 문화적 사업의 하나로 자리매김된 것 같았고, 그것과 함께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는 많은 한국 여성들이 동경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서양에서도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부모에게 재정적 책임이 따른다. 이때 초청받은 하객들은 지정된 상점에서 예비부부가 원하는 품목으로 부모님을 대신해 간소한 신혼살림을 마련해 준다. 부조 관습은 서양과 한국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은 형편에 따라 축의금을 내고, 친지들과 친구들은 별도의 축의금으로 신혼부부가 될 이들에게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며, 예비부부와 양가에서는 그것을 결혼식 비용으로 쓴다. 이러한 전통은 중요한 순환적 측면을 지니며, 자신이 낸 몫은 언젠가는 자신들 혹은 부모나 자녀들의 경조사 때에 다시 돌려받는 것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 미풍양속이 정말 좋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내 남편은 한국인이었다. 그이가 조모에게서 물려받은 소중한 가보는 증조부가 청혼을 할 때 사용한 손 편지였다. 시아버님도 그 편지로 시어머님에게 청혼하셨다고 한다. 내 남편도 그 한문편지로 나에게 청혼했었다. 거기에는 깊은 존경심마저 담겨져 있었다. 이렇게 가보를 통한 청혼은 흔한 일이 아닐 테지만 얼마나 각별하고 낭만적인가.
그리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부모의 위치는 언제나 중요하고 존경받는 자리이다. 부모의 이름으로 발행되는 청첩장과 결혼예식장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양은 자녀 결혼식 때 부모님은 일반 하객들과 같이 앉아있지만, 한국의 부모님은 꽃을 가슴에 달고 특별히 마련된 맨 앞자리 혼주석에 앉는다. 이것 또한 마음이 찡하게 나는 좋다.
나는 지금 경북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 아이들도 경북대 근처에서 자랐고 지금은 경북대학생인데 이런 연고로 경북대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면 좋을 듯 싶다. 고향의 내 부모님께서도 두 분의 모교인 스코틀랜드의 애버딘대학교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리셨다. 내 부모님이 하셨던 것처럼 내 아들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멀리 헝가리에서는 결혼식 날 하객들이 하루 종일 신랑신부를 위해 축하를 하고 가무를 즐긴다고 한다. 이번 여름 헝가리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동료에게서 전해 들었다. 결혼식이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 한국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지만 한국의 신랑신부는 주례나 사회자, 또는 축가를 부를 사람을 직접 골라 부탁할 수 있다. 나는 이 점도 정말 좋다.
내 며느리가 될 아이는 미국 플로리다 출신의 참한 아가씨이다. 사돈이 될 분들은 결혼식 날짜에 맞추어 참석하실 계획이다. 결혼식 날은 다가오는데 예비 며느리는 드레스를 빌린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서양에서는 드레스를 빌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내 결혼식 드레스를 직접 만들어 입었다. 결국 우리는 서양전통에 따라 예비신부를 아주 환하게 돋보이게 해 줄 아름답고 기품 있는 웨딩드레스를 사기로 정했다. 또 서양전통에 따라 내 아들은 결혼식 당일에서야 신부의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이것이 정말 좋다.
나는 신랑의 어머니로서 신랑의 어머니가 입는다는 하늘빛 고운 전통 한복을 입기로 결정했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좋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새 인연으로 맺어질 아들 내외에게, 하늘의 축복과 가정의 행복을 바라며 한국과 서양의 멋진 결합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황로은/경북대 국제교류원 원장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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