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沈默)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沈默)할 것.
(…….)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부분. 『풀잎』. 민음사. 1988)
시인이 자신의 시를 온전하게 이해하게 되는 순간은 아주 느리게 온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갓 태어난 시인의 시는 시인에게도 아주 낯선 존재. 시간이 지나면서 시인은 자신의 시를 이해하게 되고 그러면서 스스로를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된다. 20대의 강은교 시인이 이 시를 완전히 이해하고 썼다고 믿지는 않는다. 20대에 내가 읽은 이 시는 젊음과 역사의 우울에 대한, 달콤한 자기 위안의 사랑 노래였다. 그러나 다시 읽는 이 시는 삶에 대한, 사랑에 대한 비극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침묵은 비어 있는 휴식의 지점이 아니라 앞으로 나감을 예비하는 긴장의 지점. 사랑은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고, 우리는 미래에 쉽게 다가갈 수 없고, 그렇지만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우리의 등 뒤에는 가장 큰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비극적인 것은 그것이 언제나 우리의 등 뒤에 있다는 것. 사랑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지만 그 사랑의 빛을 바라볼 눈은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항상 나보다 한 발짝 더 늦게 온다는 것. 그런데 그게 사랑이고, 우리의 사랑법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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