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OOO 아내 은장도·기생 39명 비녀…' 국채보상운동 문건만 150여 건

세계기록유산 등재 '자격 충분' 빈곤국 외채탕감운동 등 연계 세계적 운동으로 키워나가야

국채보상운동은 구한말에 나랏빚을 갚기 위해 국가가 아닌 국민이 나선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운동이었다. 부녀자들이 대거 참여한 최초의 여성운동이었으며, 이후 한국 현대사 속에서 IMF 사태 등 국가 위기 때마다 국민이 솔선수범해 나서는 애국정신으로 생명력을 빛내고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이하 등재추진위) 공동위원장인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는 "국채보상운동을 빈곤국의 외채탕감운동이나 투기자본 규제운동으로 연계시켜 세계적인 운동으로 키워나가야 한다"며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 후세에 길이 남는 정신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등재추진위에 따르면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주요한 원본 문건만 150여 건으로 파악된다.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수장고에 35점을 보관하고 있으며, 안동국학진흥원, 서울 금융사박물관, 독립기념관, 국가기록원, 서울대 규장각 등에도 보관돼 있다. 개인이 소장 중인 자료도 있다.

당시 기록물들을 읽어보면 국가 존망의 위기를 걱정하는 민중들의 충정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대구의 애국계몽단체인 광문회 김광제(회장)'서상돈(부회장) 선생이 발표한 '국채 1천300만원 보상취지'(대한매일신보 1907년 2월)가 대표적이다.

'지금 우리의 국채 1천300만원은 대한의 존망이 달린 일이라. 지금 국고로는 갚기가 어려운 형편인즉 장차 삼천리 강토는 우리나라의 소유도, 우리 국민의 소유도 되지 못할 것이라. (중략) 2천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모은다면 거의 1천300만원이 될 것이니.'

기록물 중에는 국채보상운동의 동참을 요청하는 취지서(趣旨書), 권고문(勸告文), 발기문, 통문(通文), 연설문, 편지, 신문 논설'기사 등이 원본으로 보존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누가 얼마의 성금을 냈는지를 기록한 성책(誠冊)까지 있어 당시 국채보상운동이 전 국민의 관심 속에 깊숙히 침투해 있었음을 증명한다.

1907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우리 부인 동포에게 고함'(1907년 1월 11일 발기인 대구 남일동)이란 글에는 '○○○ 아내 정 씨, 은장도 한 개, 두 냥쭝. ○○○ 어머니 서 씨, 은가락지 한 벌, 두 냥쭝…' 등의 내용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국채보상운동에서 여성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보여주는 증거다.

담배를 끊어(斷煙) 빚을 갚자고 호소하며 '흡연자는 동포에게 죄인'이라고 경고하거나, '경성의 기생 39명이 머리의 비녀를 풀어 의연금을 냈다'고 호소하는 글도 눈길을 끈다.

고종의 밀사인 이준 열사도 '서상돈은 일본 담배의 불매운동을 제의해 전국적인 환영을 받았고, 빈부'남녀노소까지 국채경감운동에 참여했다. 아낙네와 처녀들은 패물과 머리채를 제공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일제의 눈을 피해 헤이그로 출국하기 전 각 지역에 국채보상 성금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김영균 사무처장은 "현재 우리나라 기록물 중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는 현재 11건"이라며 "애국심과 외국자본 경계의 뜻을 담은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함께 힘써달라"고 말했다.

최병고 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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