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꾸역꾸역

열여덟 살 때 다녔던 첫 직장은 3교대였다. 출근 첫 달엔 두 번째 근무 조였는데, 오후 3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했다. 구미에 있는 회사에서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대구의 집에 도착하면 새벽 1시가 가까웠다.

아버지는 밤늦게 돌아온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 아버지는 좀처럼 웃거나 찌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소리 내어 웃거나 언성을 높이는 걸 본 적이 없다. 까닭에 그날 아버지의 표정이 내게는 무척 낯설었다.

이후 줄곧 잊고 지냈는데, 30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의 얼굴에서 그 옛날과 같은 낯선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불현듯 지금 내 나이가 그때 내 아버지의 나이와 똑 같다는 것을 알았다.

세월 참 빠르기도 하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 아버지는 그날 이후 대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일을 해 오셨는지 더듬어보았다. 그러나 아버지와 관련해 뚜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그러니까 내게 어떤 각인이 될 만한 일은 없었다.

아버지는 딱히 즐거이 하신 일이 없었다. 새벽에 일터로 나갔고, 밤늦게 들어와 주무셨다. 자주 술에 취해 있었고, 가끔은 뭔가를 쓰느라 침침한 눈을 공책에 붙박은 채 몇 시간씩 앉아 있곤 하셨다. 한참 동안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아버지는 노인이 되었다.

노인이 된 지금 여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저축도 없고, 이렇다 할 업적도 없고, 하나씩 반추하며 즐거워할 추억이나 명예도 없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특별한 기여를 한 적도 없다. 지금 나와 동갑이던 30년 전 내 아버지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꾸역꾸역 살아왔고, 세월을 따라 늙었을 뿐이다.

평범한 삶이 대체로 그렇다. 아무런 이타적 선의 없이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가며,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날들을 채워간다. 그러나 그 생애는 결과적으로 자신을 돕고, 가족과 이웃을 돕고, 사회를 돕는다.

사람은 살기 위해 살지 무엇을 위해 살지 않는다. 천재적 발명이나 창작으로 인류의 삶을 혁신하는 일, 영웅적 용기와 결단으로 나라를 구하거나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일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게 되는 귀한 가치일 뿐이다. 꾸역꾸역 이어가는 삶이 없으면 귀한 가치를 얻을 기회도 없다. 영웅과 천재, 선의로 뭉친 사람들의 업적은 아름답고 고귀하기에 사람들 마음에 오래도록 각인된다. 그러나 대단치 않은 삶, 심지어 자식에게도 기억될 만한 것이 없는 필부의 삶 역시 아름답고 고귀하다.

모레가 어버이날이다. 자식을 키우며 꾸역꾸역 살아온 내 부모님과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