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고 정겹거나 듣기 좋은 지명(地名)으로 잘 바꾸면 지역 브랜드 가치를 한층 높여 경제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 외지인들도 한 번 들으면 지역의 특성이 떠올라 기억하기도 좋다. 또한 이들이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홍보할 수 있어 관광객 유치에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
과거에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어감이 좋지 않거나 혐오감을 주는 지명, 과거 일제강점기 잔재가 묻어 있는 지명을 바꾼 경우가 많다. '파산리' '고도리' '객사리' 등이 그렇다.
특히 2005년 6월 행정구역 명칭변경이 행정자치부에서 지방자치단체 조례 사항으로 이관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지명 변경이 봇물을 이뤘다. 지명을 잘 바꾸면 주민들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한층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고, 지역의 역사와 보존자원 등을 부각시킬 수 있다. 지자체들은 지명 변경을 통해 브랜드 가치와 경제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있다.
◆실촌읍→곤지암읍, 영월엔 김삿갓면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통해 지명을 변경한 곳은 고령군 대가야읍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등이다. 고령군은 1천600년 전 융성했던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해 대가야 르네상스를 부활시키기 위해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변경했다.
경기도 광주시 실촌읍은 곤지암읍으로 변경됐다. 곤지암읍에는 조선 선조 때 무장인 신립(1546~1592) 장군의 묘가 있다. '곤지암'의 유래는 신립 장군의 묘소에 얽힌 전설에서 유래하며 암(岩'바위)곁에 곤(昆'커다란) 지(池'연못)가 있다는 뜻이다.
영월군은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09년 10월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개명했다. 김삿갓면은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의 거주지와 묘, 문학관 등이 있다.
◆지형 본떠 한반도면·호미곶면…
지역 지형이나 특색에 따라 지명을 바꿔 지역 브랜드를 높인 곳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과 영월군 한반도면, 포항시 호미곶면,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등이다.
평창군은 2007년 도암면을 대관령면으로 바꾸었다. 도암이라는 지명은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용산리(龍山里)에 있는 바위 아래에서 하룻밤을 쉬어갔다고 하여 가암(街岩)이라 한 데서 유래했다.
영월군 서면은 한반도 지형을 꼭 빼닮은 선암마을이 있어 한반도면으로 지명을 탈바꿈한 뒤부터 여름 휴가철에는 주차장이 부족할 정도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붐빈다. 포항시는 한반도 호랑이 형상을 보고 2010년 대보면을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한다는 뜻의 호미곶면(虎尾串面)으로 개명했다. 충주시 수안보면은 수안보 온천이 유명세를 타면서 바뀐 곳이다.
◆"천치리…바꿔달라" 청와대 민원까지
지명의 어감이 좋지 않거나 이미지 때문에 지명을 바꾼 곳도 있다.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천현리와 정선군 임계면 문래리,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등이다.
홍천군 두촌면 천현리 마을의 한자는 샘천(泉)에 고개 현(峴)이다. 당초 이 마을은 샘천에 언덕 치(峙)자를 써 천치리로 불렸다. 하지만 마을 이름이 외지인들에게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뜻하는 '천치'(天癡)로 해석되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주민들은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해 1983년 천현리로 개명했다. 그로부터 20년 뒤 2003년 봄, 이 마을은 로또복권 407억원 당첨자의 고향으로 유명세를 탔다.
정선군 임계면 골지리(骨只里)도 2009년 말 문래리(文來里)로 바뀌었다. 골지리에는 '뼈만 남았다' '골치 아프다' 등 좋지 않은 속뜻이 담겨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도 어감이 좋지 못해 바뀐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손처눌(孫處訥)이 이곳으로 피난하여 마을을 개척하면서 곡식을 심으니 푸른 산이 주위를 에워싸고 들녘이 황금 물결을 이루었다고 해서 황청(黃靑)이라고 하였으나, 저승을 의미하는 황천(黃泉)과 발음이 비슷하여 황금동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우리가 소백산면" 영주-단양 분쟁도
행정구역 명칭변경을 놓고 영주시와 충북 단양면은 분쟁을 벌였다. 영주시는 2012년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변경을 추진했다. 단산(丹山)면이 본뜻과 달리 '출산이 끊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북 단양면은 "소백산이 양 시'군에 걸쳐 있는데 특정지역의 행정구역 명칭만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발끈했다. 단양면은 행정안전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중분위)에 영주시의 소백산면 행정구역 명칭변경 중단을 요구했으며, 중분위는 단양면의 손을 들어줬다.
이 당시 중앙분쟁조정위원회는 "소백산처럼 여러 자치단체에 걸쳐 있는 유명한 고유 지명을 특정 자치단체가 행정구역 명칭으로 독점 사용할 경우 이웃 자치단체 간에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을 불러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자치단체도 있다. 강원도 인제군은 상남면을 내린천면으로 개명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고령 전병용 기자 yong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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