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세정의 대구, 여성을 이야기하다] 대구 첫 女초교 설립 브루엔 여사

입학생 12명…교실벽에 '분 바르지 마시오'

브루엔 여사
브루엔 여사
1912년 제1회 졸업생. 신명백년사 제공
1912년 제1회 졸업생. 신명백년사 제공

대구의 초창기 여성 교육기관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대구 근대 초기 여성 교육기관을 이야기하려면 마르타 스콧 브루엔 여사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신명고등학교와 신명여자중학교가 펴낸 '신명백년사'(信明百年史)를 보면 마르타 스콧 브루엔(Martha Scott Bruen) 여사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온다.

1902년 5월 10일 대구에 도착한 브루엔 선교사의 부인 마르타 브루엔 여사는 대구선교지부 구내에서 최초의 여자 초등학교인 신명여자소학교를 만들었다. 이 학교가 만들어진 것은 5년 앞서 대구에 온 존슨 의사의 부인 에디스 파커의 바느질반 학생들이 그 기반이 됐다. 당시 존슨 부인은 집집마다 방문해 소녀들을 모집했다. 바느질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몇 명의 소녀들이 나왔고, 한글과 노래, 성경도 가르치며 바느질반을 운영해왔다.

1902년 브루엔 여사가 대구에 오면서 이 바느질반을 맡게 됐다. 또 이와는 별도로 1899년 10월 대구에 온 놀스 양이 1901년 3월부터 15세 미만의 소녀 14명을 자기 집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두 시간씩 가르쳤는데, 이 반 역시 브루엔 여사에게 인계됐다. 브루엔 여사는 존슨 부인과 놀스 양이 가르치던 내용을 그대로 가르치고, 또 먼저 개교한 대남학교의 교육과정을 본받아 지리, 산술 등의 과목도 가르쳤다. 이것이 신명여자소학교의 시작이다.

브루엔 여사는 소녀들이 결석할까 봐 계절별로 간식을 바꾸어가면서 흥미를 유도했다고 한다. 봄에는 복숭아, 살구, 자두, 여름에는 미국에서 가져온 귤, 모과수, 아이스크림 등을 줬다. 가을에는 사과, 밤, 과자 등을,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선물 등을 주기도 했다. 당시 끼니조차 넉넉지 않았던 시절, 이 달콤한 간식들이 소녀들에게 주는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1907년 10월 23일 개교식을 했고 당시 입학생은 12명이었다. 교실 벽에는 '분을 바르지 마시오' '기름을 바르지 마시오' 등의 글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1930년 10월 20일 세상을 떠난 브루엔 여사의 비문에는 '여자 교육기관 대구 대남'신명 두 학교를 설립하고 부군 선교사 부해리와 함께 교회사업에 종사하다가 1930년 10월 20일 별세함'이라고 적혀 있다.

남편 해리 브루엔은 미국에서 임명한 한국 선교사 중 세 번째 선교사이다. 1899년 10월 한국에 왔다. '대구 남산교회 100주년 기업사업회' 후원으로 출판된 '아, 대구! 브루엔 선교사의 한국생활 40년'을 보면 브루엔 선교사가 미국에 있던 사랑하는 여인 브루엔 여사에게 쓴 편지들이 있다. 이 편지들은 당시 브루엔이 들려주는 대구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당시 사람들의 의복, 경제관념, 당시의 풍경, 생활상 등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불과 100여 년 전 대구의 모습은 지금과 너무나 다르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던 이 편지가 없었더라면 아마 우리는 그 풍경을 상상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낯선 이국땅에서 열정을 불태우던 한 이방인 여성의 삶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대구여성가족재단 책임연구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