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양해각서)가 유행하는 시대다. 오늘 어느 기관이 MOU를 맺고, 내일 어느 단체가 MOU를 맺을 것이라는 뉴스가 신문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다.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는 원래 외교 용어다. 국가 간의 본 조약에 앞서 이뤄지는 문서로 된 합의를 가리켰지만, 이제는 기관, 기업, 단체 등에서도 많이 쓰인다. 정식 계약에 앞서 의견을 조율하고 확인하는 상징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법적 구속력이 없고 상대방이 약속을 어겨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포항시는 유독 MOU에 얽힌 사연이 많은 자치단체다.
매일신문 인터넷 홈페이지(www.imaeil.com)의 검색창에 '포항시' 'MOU' 두 단어를 입력해보자. 100건에 달하는 기사가 한꺼번에 올라온다. 포항시가 외지기업 유치를 위해 그만큼 MOU를 많이 체결했다는 얘기다.
포항시 자료를 보면 박승호 전 시장 재임 8년간 총 45건의 MOU를 맺었고, 그중 추진완료 27건, 추진 중 3건, 추진불가 및 파기 15건으로 돼 있다. 이 통계에는 빠져 있지만 황당하고 우스꽝스런 MOU들이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2010년 사기와 횡령 혐의로 검찰 수배를 받고 있는 용의자와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이다. 당시 포항시는 중동 투자자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해양개발업체와 MOU 체결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가, 사기행각에 놀아난 것으로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그뿐 아니다.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30여 개사를 유치하는 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가 허위사실임이 밝혀졌고, 7조6천억원 규모의 복합화력발전소 투자 유치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됐다. 포항시가 시장의 치적 홍보를 위해 확인 과정도 거치지 않고 MOU를 남발하다 빚어진 해프닝이다. 오죽했으면 당시에 박 전 시장을 'MOU시장'이라고 불렀을까.
이강덕 시장은 어떨까. 취임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21건의 MOU를 체결했다. 이 시장이 외지기업 유치를 최대 시정목표로 삼고 열심히 뛴 결과라고 한다. 이 시장에게 가혹한 말이 될 수 있지만, MOU야말로 전시행정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MOU 체결 건수는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MOU 이후 실질 투자와 공장 이전, 가동까지 수많은 난관이 남아있다. 1건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기업을 잡아야 한다. 이 시장마저 'MOU시장'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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