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개관한 '권정생 동화나라'(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으로 널리 알려진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문학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관심을 끌면서 매월 500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사업추진 단계에서부터 위치 선정 논란이 이어진데다 정작 개관하고 난 뒤에도 콘텐츠 부족 등 비판이 잇따르면서 '어른 눈높이에 맞춰 지어진 어린이 동화나라'라는 지적에 휘말리고 있다.
◆비좁은 집입로에 부족한 콘텐츠
지난 4일 안동시 일직면 '권정생 동화나라'를 찾은 김경일(42'대구 신암동) 씨는 큰 실망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이날에 즈음해 동화나라로 가족나들이를 갔다가 길을 못 찾아 1시간을 헤맨 뒤 도착한 동화나라에서 관람은 불과 10분만 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김 씨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강아지똥'의 저자, 권정생 기념관을 지었다는 말만 듣고 안동을 찾았는데 좁은 농로에 이정표 하나 없어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입구에 도착한 김 씨는 주 이용객인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건물 외관과 조악한 체험시설 등을 둘러보고 또 한 번 놀랐다고 했다. 승용차 5대도 못 세우는 좁은 주차장에다 지저분한 주변 환경 때문이었다. 관리인은 1명뿐이었다. 건물 입구에는 소박했던 권정생 선생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데크 계단이 놓여 있었다. 건물 내부 전시관은 공간이 무척 협소했다. 선생이 생전 사용하던 유품과 소장했던 기록물들이 볼품없이 진열돼 있었고 도서관에는 동화책 몇 권밖에 놓여 있지 않았다.
김 씨는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다 둘러보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선생의 생전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물 외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볼거리가 너무 부족했다"고 했다.
◆부실시공 흔적 곳곳에서
선생의 유품과 책 등을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에는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기록물과 유품들이 방치돼 있었다. 수장고는 이중창 잠금장치 외에 별다른 보안설비가 없어 도난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선생의 손때가 묻은 필기구와 메모 등은 플라스틱 상자에 그냥 담겨 있었다. 그나마 책과 비품들은 값싼 철제 앵글로 짜서 만든 책장에 진열돼 있었다.
폐교를 활용해 31억원이라는 예산을 들여 지은 기념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건물 옆 인근 야산에는 비만 오면 토사가 흘러내리는 등 배수시설이 미흡했다. 또 설계 당시 건립하려 했던 생태체험장과 연못은 아예 지어져 있지 않았다.
문학관의 난방설비는 아예 설계가 잘못됐다. 건물 2층에 마련된 8개의 어린이 숙소에는 각각 난방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온수를 사용할 수 없었다. 애초 설계 당시 대규모 단체 예약만 받을 것으로 예상해 중앙집중식 대형 보일러 하나만을 설치한 것이다. 단 한 개 방을 예약받아 온수를 사용하려면 50~60명분이 사용하는 온수를 가동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마을 주민 권모(46) 씨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건립되어야 할 동화나라가 어른들 눈높이에 맞춰 '어른 동화나라'가 된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며 "권정생 선생의 작품세계와 정신이 담긴 제대로 된 어린이 테마파크가 건립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생의 작품세계와 정신을 살리지 못한 건물이란 오명을 떠나 주이용객인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건물 외관과 조악한 체험시설은 재보수가 절실해 보인다.
어린이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안전시설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데크 계단은 어린이들의 보폭을 고려하지 않은 성인용 계단 높이로 설계돼 이용에 상당한 불편함을 줬다. 특히 계단바닥에 미끄럼 방지 바닥재도 없어 눈과 비가 올 경우 헛디딤 사고의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또 장애인이 2층 수련시설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나 리프트 시설조차 없었다.
동화나라 위탁 운영을 맡은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의 관계자는 "안동시와 시공업체에 계속해서 하자보수를 요청하고 있다"며 "문제가 되는 숙소는 리모델링해 교육용 콘텐츠 실로 운영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동 권오석 기자 stone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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