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셀카봉 사회학

"내 옆엔 언제나 역도선수만 앉는다니까."

멋진 훈남을 기대하고 열차에 올랐는데 비호감의 이성이 앉아있을 때 상황이다.(진짜 역도선수들께는 죄송) 물론 지금 그런 로맨스에 대한 기대나 추억은 화석화 된 지 오래다. 옛날엔 '옆자리 인연'이 아름다운 교제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고 남녀 모두 이런 우연을 즐겼다.

요즘은 이성이든 동성이든 옆자리 승객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예의가 돼버린 듯하다.

비호감일 망정 옆자리 이성과의 인연을 기대하며 두근거리며 트랙에 오르던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앉기가 무섭게 이어폰을 귀에 꼽거나 스마트폰을 꺼내 각자 세계 속으로 몰입해버린다.

10여 년 전 동네 목욕탕에 가면 혼자 온 사람들끼리 슬쩍 조(組)를 맞추는 등밀이 품앗이가 언제나 있었다. '등 밀어 드릴까요?' 하고 누가 멋쩍게 다가오면 두말없이 등을 내주었다. 나도 똑같이 베푼다는 암묵의 거래가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목욕탕에선 이런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4, 5년 새 이런 '멋쩍은 제안'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받은 적이 없으니 나도 제안한 적도 없다.

'등 밀어줄 아들'이 없는 사람들은 등쪽 사각지대 위생을 포기하거나 세신사(洗身士)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10년 전쯤 일본 식당에서 '1인석'을 보았을 때 무척 생소했던 기억이 있다. 칸막이가 된 식탁에서 벽을 보며 라멘을 먹는 사람들을 보고 일본 공동체 문화의 퇴조를 조심스럽게 예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1인석이 어느새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시내 분식점의 한 편은 나 홀로 족을 위해 독서실처럼 꾸며놓은 곳이 많다. 음식과 정을 나누는 식사문화가 허기를 때우는 충전소처럼 돼버린 것이다.

이런 개인주의 문화는 셀카봉에 와서 정점을 이루는 느낌이다. 1m 남짓한 스틱에서 나오는 각(角)이 뻔할 텐데 젊은 세대들은 죽자 하고 쇠막대기만 쳐든다. 셀카봉을 든 일행이 한 공간에 있다면 '셔터 품앗이'를 하면 훨씬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셀카봉은 간섭하지도 간섭받지도 않겠다는 젊은 층의 이기(利己)문화가 집약된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공동체나 이웃을 위한 배려가 끼어들 여지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런 괴물(기성세대의 시각으로)이 미국 '타임'이 선정한 '2104 최고 발명품'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점도 기성세대 정서와는 맞지 않는 일이다.

10여 년 새 '꽤 괜찮았던' 공동체 문화나 낭만들이 서둘러 폐기되어가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한 번 사라진 것들은 되돌리기가 무척 힘들기에 더욱 안타깝다.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등 미셨습니까' '합석 좀 합시다' 이런 표현들이 고문(古文)에서나 보게 될 날이 머지않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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