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중앙대 재단이사장 출두날
남녀 학생들이 카네이션 달아주어
젊은이들의 실존적 처절함에 눈살
자본가 이사장이 대학에 남긴 살풍경
신문에서 본 사진 한 장. 기가 막히다. 박용성 중앙대 재단 이사장이 비리혐의로 소환조사를 받던 지난 15일, 남녀 두 명의 중앙대생이 '박용성 이사장님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펼쳐들고, 검찰에 출두하는 그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문제의 종이에는 '08학번 박아무개, 11학번 유아무개'라고 이름까지 적혀 있다. 이 실존적 처절함. 젊은이들이 벌써부터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도덕의식의 파산. 이는 두산그룹이 추구하는 교육이념의 완벽한 실현이기도 하다. 박용성 전 회장은 이미 2004년 어느 인터뷰에서 심오한 교육철학을 피력하신 바 있다. "대학이 전인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말은 헛소리고 옛말이다. 이제는 직업교육소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회장님 머릿속의 이 천박한 생각은 마침내 그의 머리 밖으로 나와 현실이 된다.
두 학생은 5월 15일 이사장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렸다. 그날이 '스승의 날'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 학생들의 머릿속에서 진정한 스승은 이사장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이 '직업교육소'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스승의 날에 이사장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그 두 학생은 '스승의 날'에 자기 과 교수님들 가슴에도 카네이션을 달아 드렸을까?
노영수 씨의 책 '기업가의 방문'(2014)엔 중앙대의 두산 잔혹사가 잘 기록되어 있다. "중대 애들은 뽑아 놓으니 숫자는 좀 알더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이사장님의 바람에 따라, 회계학이 교양필수 수업이 되었다. "지금의 교양과목은 필요 없다"는 이사장님의 소신에 따라 교양수업의 혁신도 이루어졌다. "[조별실습과제] 두산그룹의 브랜드 이미지를 고취시키기 위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안서를 작성하라."
흥미로운 역설이다. 정작 박용성 전 회장께서는 회계를 잘못했다고 검찰청에 드나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의 혐의는 우리은행에서 임대료 명목으로 받은 100억원을 이면계약서까지 작성해가며 재단계좌로 빼돌려 재단전입금으로 전용했다는 것이다. 회계를 제대로 했다면 '배임'이나 '사립학교법 위반' 같은 범죄는 저지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중대 애들은 숫자를 좀 아는데 이사장님만 모르시는 걸까?
참고로 그분께 중앙대 2012년 '회계와 사회' 시험문제를 권하고 싶다. "㈜한국전자 사장님은 (…) 개인적으로 회사를 운영함으로써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공인회계사의 지적을 받고 화를 내면서 내가 만든 회사인데 내 맘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이 중에서 옳은 것은?" 정답은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기 때문에 사장이라 하더라도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다"이다. ㈜중앙대의 운영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듯이, 이사장님도 대학을 제 형상대로 만드시고 싶었다. 당연히 학내 성원들의 반발이 있을 수밖에. 그들에게 이사장님은 이렇게 일갈하셨다. "그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쳐줄 것이다." 교수들 목에 칼을 들이대며 박용성 이사장은 대학에 자본가 칼리파트의 수립을 선언하셨다.
"현재 대학의 교양과목은 구청문화센터 수준"이라며 "이런 걸 대학에서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셨던 박용성 이사장. 하지만 정작 그만큼 대학에서 교양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를 온몸으로 역설한 이도 없을 것이다. 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서 '교양 없이 회계만 배운 기업가는 그걸로 배임이나 하다가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자신도 감옥에 가게 된다는 진리'를 세웠기 때문이다.
비록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나, 어쨌든 그는 사표(師表)를 세웠다. 카네이션을 받을 만도 하다. 문제는 카네이션의 의미다. 중대생들이 박용성 이사장에게서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엉뚱한 것을 배웠다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사장 가슴에 카네이션을 다는 두 학생은 자본가 칼리파트가 대학사회에 남기고 간 살풍경이다.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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