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바깥으로 세계로!

1954년 대구생. 경북고·서울대. 뉴욕부총영사. 태국 공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우즈베키스탄 대사
1954년 대구생. 경북고·서울대. 뉴욕부총영사. 태국 공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우즈베키스탄 대사

영국 비숍 여사 1세기 전 한민족 칭송

연해주 한인 남성들 개척정신에 탄복

대한민국 세계경영의 미래를 미리 봐

현재의 젊은이도 바깥으로 눈 돌려야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 여사. 영국 출신으로 세계 곳곳을 다니며 인문지리를 조사'연구했던 여장부다. 63세 나이로 여사가 한반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4년 초였으며,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 1897년까지 네 차례나 한반도 방방곡곡을, 한인들이 이주해 살았던 연해주 지방까지 둘러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1898년

(Korea and Her Neighbours)을 출간했다. 19세기 말, 20세기 문턱에서 대한제국이 성립되기 직전의 기울어진 조선 모습을 오늘의 우리 눈앞에 생생히 재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연해주가 러시아 차르의 땅이 된 지 불과 한 세대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다. 극동의 땅에서 제정 러시아는 태평양을 내다보며 항구를 건설하고, 철도를 부설하며, 도로를 닦는 등 동방경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편 한반도에서는, 그러니까 1896년 2월 임금인 고종까지 러시아 공사관에 몸을 두고 차르의 보호를 받고 있었으니, 탁월한 외교적 선택인지, 아니면 치욕의 역사인지 분간이 잘 안 가는 우여곡절의 정국이었다. 그럼에도 달랑 몸 하나로 두만강 넘어와서 거친 환경에도 굴하지 않으며 의연하게 사는 한인들을 비숍 여사는 보았으며, 오히려 외지에서 불굴의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목격하고는 탄복하며 감격의 글을 남기고 있다.

여사는 한인 정착촌을 두고, "한인 정착촌은 고국에서라면 매우 높고 힘센 정승 계층의 저택 같은 큰 집을 이루고 있었다. 일대의 토지는 광활하며 비옥한 농토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초기 한인마을들의 이름 가운데 지신허(地新墟-땅 새로 일군 마을)니, 양치허(洋治墟-대양을 다스리는 마을)니 하며 무슨 허(墟)가 많이 보인다. 이런 허가 무엇일까 궁금해하였는데, 그 유명한 성주풀이에서 "낙양성 십리 허(墟)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라고 할 때, 바로 그 허라는 게 아닌가! 과거 5일장이 설 때, 5일장이 미치는 공간영역, 곧 그 3차원의 넓이가 1허(墟)라는 설명을 들었다. 마을 이름 하나에서도 사뭇 우리 선인들의 담대한 포부가 엿보인다고 해야 하겠다.

여사의 감탄은 계속된다. "고국에 사는 조선 남자들은 그 성향이 나약하고 까탈스럽지만, 여기 바깥에서는 성격이 실질을 숭상하는 방향으로 변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한인 남자들에게는 고국에 있는 남자들과는 달리 특유의 풀죽은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한 조선 남자들의 전형적인 의심이나 불신, 하잘것없는 자부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굴종하는 비굴한 근성 등 나쁜 성향과 정신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히려 진취적인 자조 정신, 또 독립심으로 무장된 거친 남성을 느낄 수 있었으며, 아시아인이라기보다는 영국인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당시가 어떤 때였던가? 대영제국이 식민정책으로 순풍에 돛 단 듯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고 있었던 때가 아니었던가! 영국 남자들이 최고로 잘나가던 시절이었고, 영국이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였다. 바깥의 우리 한인들을 그런 영국 사람들과 비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비숍 여사는 1세기 훨씬 전에 벌써 우리 한민족의 가능성, 대한민국 세계경영의 미래를 연해주에서 보았던 것이다. 고난에 굴하지 않고, 이주하여 살던 우리 선인들의 당찬 모습에서 민족적 희망을 발견했다. 오늘 우리가 발전을 거듭하며 끝없이 시장을 개척하고 있음을 볼 때, 비숍 여사의 그 옛날 예언이 얼마나 적확했던가를 탄복 없이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한국인은 새롭고 어려운 환경 속에 던져졌을 때, 비로소 엄청난 폭발력, 세상이 놀랄 창의력을 발휘하며 기가 센 진정한 사람으로 거듭나는가 보다. 오늘을 사는 젊은 사람들도 더 바깥으로 눈을 돌려야겠다. 중동뿐만 아니라, 러시아 시베리아, 중국 내륙, 천산 넘어 중앙아시아, 태평양 건너 중남미 등 우리가 밟아야 할 곳은 널리고도 널렸다.

전대완/계명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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