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이드 생활을 한 5년 동안 차를 네 번이나 바꿨다. 제일 처음 만난 차는 '벤츠 190E' 1985년식이다. 벤츠사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경제적인 차를 선보이고자 했고, 이 모델은 1982년부터 벨기에에서 생산했다. 당시 이 차의 인기는 폭발적이라 영국에서 구입하려면 1년을 기다려야 했다. 모든 디자인이 직각이고 4기통 캬브레타 엔진에 '자동'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수동식 그 자체였다. 대형 와이퍼 한 개로 빗물을 감당했고 에어컨도 없는 클래식 카였다. 비록 올드 카였으나 나는 500유로(한화 75만원)에 구입했다. 한국에선 마니아들끼리 아직도 300만~400여만원에 거래되는 모양이다.
한번은 교차로 빨간 신호 앞에서 우회전을 하는데 경찰차가 뒤쫓아왔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차를 세웠다. 경찰의 말은 빨간 신호에서 우회전을 했으니 신호 위반을 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우회전을 다 하는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경찰은 "여긴 비엔나다"라는 단 한마디 말로 나의 주장을 무력화시켰다. 외국인을 많이 상대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몰랐다"는 발뺌 작전으로 젊은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는 사이, 다른 나이 든 경찰관이 구닥다리 내 차를 기웃거리면서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러면서 "이거 몇 년 식이냐?" "얼마 주고 샀냐?" 뭐 이런 걸 물어보는 통에 단속이고 뭐고 졸지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져 "조심하라"는 주의만 듣고, '클래식 벤츠' 덕분에 딱지를 면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벤츠는 나와 오랜 인연이 아니었다. 구입한 지 5개월 만에 여름이 왔는데, 에어컨이 안 되니 함께 태운 손님들의 불평으로 애물단지 벤츠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신혼부부를 태우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던 중 고속도로에 홍수가 나서 차량 정체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데 갑자기 보닛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냉각수가 다 사라져 연기가 난 것이었다. 급한 대로 고속도로 옆 개울에서 물을 날라다 냉각수를 보충하고 다시 출발했지만 차만 서면 물이 끓어올랐다. 투어 중단 위기였으나 차가 정지할 때마다 시동을 끄는 식으로 극한 상황은 면했다. '고물 벤츠' 덕분에 하마터면 신혼부부의 소중한 여행을 망칠 뻔했다.
고물 벤츠의 '서모스탯' 냉각조절기 수리비는 대략 200유로(한화 30만원)였는데 부품비 50유로에 인건비가 150유로였다. 차를 조금 아는 사람은 서모스탯 정도는 부품을 사다가 스스로 교환이 가능하다. 수리 소요시간은 고작 10분임에도 20여만원의 인건비가 든다. 유럽에서는 바가지가 아니고 정상적인 수리비다. 내가 만난 4대의 차들은 모두 말썽꾸러기 차들이었다. 툭하면 고장이 나서 폭탄수리비로 울상을 짓던 때에 폴란드 출신의 정비사 '실버스타'를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소의 눈처럼 착한 눈을 가진 정비사 실버스타에 관한 얘기는 다음에 계속하려고 한다.
군위체험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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