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해부제, 시신기증

매년 5월 마지막 주가 되면 의과대학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며칠간의 짧은 축제 기간은 공부와 시험에 지친 의대생에겐 재충전의 시간이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축제에 드문드문 참석했지만, 올해는 가요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게 됐다.

학교 안 '중간마당'이라는 공간에서 참가자들의 노래를 즐기거나 응원도 하며 즐겁게 심사를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노래실력에 감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해부제' 포스터를 봤다.

의과대 축제에서 외부에 개방되는 행사 중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해부제가 아닌가 싶다. 해부제는 여러 장기나 사체 표본들을 전시해 놓고 해부학교실에 속한 의대생들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안내와 설명을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두려움을 누르며 진짜 의대생이 된 기분으로 해부학실습실로 발길을 향하던 그때가 벌써 햇수로 이십 년이 넘는다. 두려움이나 거북함도 잠시, 눈물 쏙 빼는 포르말린 냄새에 시달려 가며 혈관이나 신경을 잘라먹지 않고 잘 분리시켜 낸다고 고생했던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니 며칠 전에 읽었던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교육이나 연구 목적이라도 무연고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할 수 없도록 한 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는 인수자가 없는 무연고 시체가 발생하면 시체를 의과대학의 연구용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다.

과거 해부학 실습 때 실습하는 사체의 대부분이 무연고 시신이고 기증된 시신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사정을 알아보니 경북대 의과대의 경우 벌써 10여 년 전부터 무연고 시신을 기증받지 않고, 본인 의지에 의한 기증사체만으로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본인의 사후에 사체를 의과대학 교육용으로 기증하겠다고 서약을 하고 그 이후 사망을 하게 되면 유가족의 동의를 한 번 더 거치게 된다. 만약 여기서 유가족이 반대하면 시신 기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교육 목적의 사체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지역의 보수적인 분위기도 한몫한다고 한다. 서울 지역, 특히 종교재단이 설립한 사립학교 의과대들의 경우 종교적인 분위기로 말미암아 교육용 사체 기증이 활발해 의과대의 해부실습뿐 아니라, 임상의사들을 위한 교육에도 사용되고 있다. 유교적인 우리 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신 기증과 장기 기증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지만, 외국과 비교를 해보면 아직 많이 부족한 것 또한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소중한 목숨을 살리는 장기 기증도 중요하고, 그러한 사람들을 살릴 미래의 의사를 길러낼 시신 기증도 중요하다. 진지한 고민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떨까?

윤창호 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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