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무사(思無邪)

시경(詩經)은 중국 주초(周初)에서 춘추초(春秋初) 사이 민간에서 전승되어온 3천여 편의 노래 중 305편을 공자가 추려서 편찬한 책이다. 원래는 311편이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것은 305편이다. 공자는 이들 305편의 시를 관통하고 있는 정신적 가치를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다.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 蔽之曰 思無邪)

그런데 이러한 공자의 언명은 후대 학자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305편 중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음란시가 다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무사와 음란시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한대(漢代) 학자들은 음란했던 세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백성을 교화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음란시가 창작된 것으로 해석했다. 시경의 음란한 시는 글자 그대로 음란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이런 해석은 송대(宋代) 주자(朱子)에 의해 약간 변형된다. 주자는 시경의 음란한 시에 교훈의 외피를 씌웠던 이전 학자들과 달리 시경 국풍(國風-민요를 뜻함)에 있는 30여 편의 시를 골라 '음분시'(淫奔詩)라고 이름붙였다. 음란한 시가 맞다는 것이다. 이는 '사무사'가 아닌 '사유사론'(思有邪論)이라고 할 수 있다. 유가의 정통 교리(敎理)를 부정하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오해받기 딱인 해석이었지만 주희 당대부터 명(明), 청(淸)을 거치며 700여 년 가까이 국가 공인 해석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그 이유는 주자가 음분시를 정상적인 남녀 관계가 아닌 야합(野合)이나 그에 가까운 관계를 묘사한 시로 한정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사무사의 사(邪)의 의미도 예(禮) 즉 '천리(天理)에 어긋남'으로 구체화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자 역시 정통적 해석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주자는 이런 시를 시경에 존속시킨 것은 후세 사람들에게 경계로 삼도록 하고자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가 지난 9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과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도쿄 일본기자클럽 방명록에 '사무사'를 썼다. 그 기자회견이 아베 총리의 과거사 왜곡을 꾸짖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무사를 어떻게 해석하든 생각에 삿됨이나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천리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베가 사무사로 돌아가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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