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무한도전'에 보내는 무한 찬사

MBC TV '무한도전'의 '극한알바' 해외 편을 보다 또 한 번 감탄했다. 이거야말로 '가장 진화된 형태의 예능'이자 업계 종사자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꿈의 예능'이 아닌가 싶었다.

국내 정상급 출연자들을 '휴가 보내주겠다'고 속인 후 머나먼 해외로 보내 다짜고짜 일을 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 유일하다. 이런 즉흥적인 상황 속에서도 호흡을 맞춰 양질의 분량을 확보하는 팀도 '무한도전'이 사실상 유일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무한도전'에 대한 격한 찬사의 글을 남길까 한다.

◆'극한알바' 해외 편, 블록버스터급 즉흥 예능

#방콕 포상휴가라더니 3국 국제 일터로 보내

#역시… 김태호 피디! 출연자·시청자 깜놀

'무한도전'의 '극한알바 해외편'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3일까지 3회에 걸쳐 방송됐다. 애초 명목은 '무한도전'의 10주년을 기념하는 포상휴가였다.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함께 방콕으로 건너가 휴가를 즐기고 그 과정을 간략히 찍어 보여준다는 계획. 하지만 그동안 김태호 PD를 비롯한 '무한도전' 제작진이 수도 없이 출연자들을 속여가며 돌발상황을 만들어왔던 터라 휴가 당일부터 현장에 '불신'이 팽배했다.

'무한도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증명하듯 꽤 많은 취재진이 휴가 떠나는 '무한도전' 팀을 만나기 위해 공항으로 나왔고, 출연자들은 이들을 보고 '제작진이 풀어놓은 가짜 기자들'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아무렇지도 않게 거친 말투로 일관하는 박명수에게 PD가 직접 다가와 주의를 줬을 정도. 그만큼 출연자들도 제작진이 심어둔 트릭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고 이 과정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시청자들에게 '큰 재미'로 전달됐다.

더 놀라운 일은 방콕 공항에 도착한 이후부터 일어났다. 일단 방콕에 왔으니 '최소한 방콕 안에서 뭔가를 찍으려 하겠지'라고 생각하던 출연자들을 인도와 중국, 아프리카로 각각 보내버린 것. 시청자 입장에서도 놀란 건 마찬가지다. 촬영 당일 갑작스럽게 미션을 던져주고 홍콩이나 마라도로 출연자를 보내버리는 일은 있었지만, 해외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그곳에서 다시 타국으로 떠나보내는 '과한 장난기'를 보여준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출연자들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서 두어 시간 정도면 날아가는 중국을 굳이 태국 방콕 공항까지 갔다가 되돌려 보내리라고는, 그 당황한 표정을 보여주고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비싼 비행기 값을 공중에 날려버리고 바쁜 출연자들의 스케줄을 몰래 조율하느라 애를 쓸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정도면 예능 프로그램 한 편의 평균 제작비를 감안할 때 '블록버스터'라고 불러도 모자랄 정도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휴가지'에서 '국제 일터'로 날아가게 된 멤버들은 2인 1조로 나뉘어 중국에서 가마꾼으로 일하고, 인도의 거대한 빨래터에서 막노동을 했다. 그리고 케냐의 나이로비 국립공원 내 코끼리 고아원에서 새끼 코끼리를 돌봤다. 정해진 시간 동안 일을 마친 후에야 다시 방콕으로 되돌아와 '휴가 대열'에 합류했다. 단, '휴가'를 즐길 때에도 카메라가 따라붙었고 시시때때로 제작진의 장난기가 발동해 출연자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과한 장난에도 찰떡같은 호흡을 자랑하며 웃음을 주는 출연자들이다. 사실 험한 촬영으로 출연자들을 혹사시키며 재미를 준다는 게 제작진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출연자 본인뿐 아니라 소속사 관계자들과 일일이 소통해야만 하고 고생한 후에 찾아올 '보람'에 대해 책임도 져야만 한다. 특히나 출연자들에게 거짓말까지 하며 혹독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건 어지간히 능력 있는 PD, 또 '대박 프로그램'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막상 소몰이를 하듯 억지로 촬영이 가능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출연자들이 불평불만을 터트리거나 그들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면 좋은 결과물은 나올 수 없다.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그저 웃으면서 즐기면 그만이지만, 방송계를 어느 정도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무한도전'의 이번 기획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10년이란 시간만큼이나 탄탄해진 출연자들 간의 호흡, 또 제작진과 출연자들 간에 쌓인 신뢰가 바탕이 됐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기획'이 가능했다.

◆'무한도전'의 브랜드 파워, 적수가 없어

#무한도전 10살…폭넓은 마니아층 보유

#여섯 번째 멤버 광희도 대중 통해 뽑아

'무한도전'에 맞설 만한 이를 꼽아보라면 CJ E&M으로 건너가 '꽃보다 할배' 시리즈, '삼시세끼'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나영석 PD를 떠올릴 수 있겠다. 최근 2년여 간 독창성과 추진력 면에서 최고의 평가를 들으며 제51회 백상예술대상 방송 부문 대상까지 거머쥐었으니 이 정도면 '무한도전'의 대항마로 적당할 듯싶다.

그렇지만 나영석 PD가 만들어낸 프로그램들이 '무한도전'만큼이나 충성도 높은 팬층을 거느린 건 아니다. KBS 재직 시절 '국민예능'이란 말까지 들은 '1박 2일'을 만들어냈지만 그 후 이 프로그램에서는 손을 놨다. 능력급으로 '무한도전'과 '맞짱'을 뜰만 한 유일한 인물이지만 10년간 폭넓은 마니아층을 형성한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 자체의 브랜드 파워와 비교하기엔 '종목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흔히 마니아 성향의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특정층에만 어필한다는 부정적 의미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지극히 마니아 취향의 프로그램이면서도 폭넓은 연령대의 대중을 끌어들인다. 다시 말하면 마니아의 폭을 넓혀 대중을 '무한도전'의 마니아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무한도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최근 새 멤버를 뽑는 '식스맨'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증명됐다. 여러 명의 인기 예능인들 중 장동민이 유력후보로 떠오르자 프로그램의 팬들을 중심으로 극심한 반대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장동민은 궁지에 몰려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식스맨'의 주인공이 돼 '무한도전'에 합류한 제국의 아이들 멤버 황광희 역시 이에 반대하는 여론 때문에 마음고생을 톡톡히 했다. 예능 프로그램의 멤버가 누가 되든 그건 제작진의 뜻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도 '무한도전'은 이미 그 정도의 수준을 벗어나 대중과 함께 고민해야만 하는 단계까지 와버렸다.

지난 2012년 MBC의 장기파업이 이어질 때도 파업의 이유 및 의미를 알리려 노력하던 이들은 대중에 '무한도전'을 내세웠다. 파업이 끝나야, 그리고 사측이 아닌 노조 측의 입장이 반영된 상태로 파업이 끝나야 다시 '무한도전'을 볼 수 있을 테니 지지해달라는 말이었다. 길거리에 나온 노조원들도 '무한도전'을 내세운 피켓을 들고 MBC 파업지지 서명운동을 했다. 실제로 파업으로 인해 '무한도전'이 24주간 결방되면서 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MBC의 파업을 지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놓기에 '무한도전'이란 콘텐츠에 대한 팬들의 충성도는 충분히 반영할만한 것이었다.

단언컨대, 김태호 PD가 타사로부터 거액의 영입제의를 받으면서도 MBC에서 나오지 못하는 건 순전히 '무한도전'이란 한 편의 프로그램 때문이다. 김태호 PD가 타 방송사에 들어가 히트작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무한도전'처럼 영향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텍스트 자체의 우수성과 컨텍스트적 요소가 적절하게 받쳐줘야만, 그리고 트렌드의 흐름까지 확실히 맞아떨어져야만 나올 수 있는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이기 때문이다.

정달해/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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