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중견 건설회사에서 32년을 근무하고 은퇴를 1년 정도 앞두고 있는 59세 남자입니다. 결혼생활도 30년을 훌쩍 넘겨 아이들은 모두 출가해, 은퇴하면 부부만 남아서 큰 걱정 없이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큰 복병은 아내입니다.
결혼생활 34년 동안 작은 다툼은 있었지만, 큰 파도 없이 잘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막내를 출가시킨 이후 제가 은퇴를 하면 정식으로 이혼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유는 아내가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저의 독단적인 성격과 잔소리를 참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 저랑 같이 지낼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지금껏 아이들이 출가할 때까지 기다려왔다는 충격적인 말도 들었습니다. 평소에 큰 불만이나 이혼 요구가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터라 저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이혼 요구에 너무 놀라기도 하고, 괘씸한 마음에 이혼을 해 줄까도 생각했습니다. 아내 없이도 퇴직 후에 나오는 연금과 남은 재산으로 혼자라도 노후는 걱정이 없습니다. 저는 종가의 장남이라 가부장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고, 깔끔한 성격이라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저도 가족들을 위해 직장 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았고, 아내가 그동안 왜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지금에 와서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은퇴를 하면 아내 말대로 이혼에 응해야 할지 고민이고 한편으로는 은퇴가 두렵습니다.
■해법= 30년을 넘게 근무한 직장에서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아내의 갑작스러운 이혼 요구로 인해 당황스럽기도 하고 괘씸한 마음까지 드는 것이 당연하겠죠. 34년 동안의 결혼생활이 특별히 불행했다거나 부부 사이가 이혼할 만큼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이혼을 요구받는 입장이라 더욱 당황스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몇 개월 전에, 몇 년 전에, 아니면 지금 딱 한 번 의 터무니없는 실수나 한두 번의 잘못으로 관계가 멀어지거나 이혼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꾸준히 아주 효과적으로 좋지 않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도록 모든 생활방식을 설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남편의 평소 깔끔한 성격이나 가부장적인 사고, 독단적인 성격이 아내에게는 평생의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 같고요. 잔소리가 심하고 가부장적인 자신의 성격을 스스로 고백할 정도라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아내로 하여금 이혼이라는 결심을 하게 했지 않을까 짐작이 됩니다.
실제로도 내담자의 경우처럼 남편의 정년퇴직에 맞춰 이혼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황혼 이혼 비율이 28.1%로 신혼 이혼을 앞질러 1위를 차지했습니다. 결혼 25년 이후 이혼하는 경우를 신혼기 이혼에 빗대어 '황혼 이혼'이라 부릅니다. 신조어로 '젖은 낙엽 증후군'과 함께 일본에서 유행한 말입니다. 퇴직한 남편들이 젖은 낙엽이 빗자루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아내 곁을 24시간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미 일본은 15년 전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황혼 이혼은 이혼을 제기하는 쪽이 대체로(70~80%) 여성이라는 것과 시기적으로 이혼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최소화되는 시점을 선택하고,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경우에 제기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내담자 분은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는데 응해야 하는지의 여부가 고민일 것입니다. 이혼할지 결혼생활을 계속해 나갈지의 판단과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일반적으로 이혼은 부부 두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결정이지만, 이혼의 파장은 부부의 부모와 그들의 자녀, 즉 3세대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개인의 상처, 자녀들의 불안정함, 경제, 건강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만들어 냅니다. 물론 현대에서는 이혼을 불행한 결혼 관계와 스트레스와 갈등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새로운 자기 발견의 기회라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가오는 황혼 이혼의 무게감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내담자 분도 황혼의 이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알아 두신다면 선택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첫째, 노년기의 황혼 이혼은 젊은 시절의 이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혼을 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배우자와 가족을 이룰 수도 있겠지만 황혼 이혼의 경우 그런 일이 쉽지 않습니다. 유사한 관심이나 이념, 생활양식을 가진 배우자를 만날 확률은 초혼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더 낮으므로 재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재혼 시장의 제한성 때문에 황혼의 재혼은 불안정성이 더욱 강합니다. 결국 대부분 혼자 쓸쓸하게 여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현실은 남성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여성의 경우는 20년 이상을 가정의 대소사를 챙기면서 많은 경험을 자원으로 갖게 됩니다. 감정을 공유하는 자식이 있고, 경제적으로 결정권을 가질 수 있고, 다양한 친구가 있고, 취미 생활과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생깁니다. 하지만 남성들은 오랜 직장 생활로 인간관계의 폭이 여성에 비해 좁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둘째, 대부분 남편들은 은퇴 후 본인의 연금과 재산으로 노후를 보낸다고 생각하고 이혼 후에도 자신의 재산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황혼기의 이혼은 단순히 틀어진 결혼 생활을 청산하는 그 이상입니다. 남녀평등을 인정하는 가족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여성들은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전업 주부는 30~50%까지, 맞벌이 여성은 50%까지 재산 분할을 받을 수 있고, 연금분할 제도에 근거하여 공무원연금이나 국민연금을 분할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남편들은 대부분 연금이나 모은 재산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혼은 결국 자신의 노후자금이 반 토막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이혼을 하든, 결혼생활의 지속을 선택하든지 관계없이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의 지나간 삶들을 아내의 삶 속에 들어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혼 여부를 떠나 34년을 부부로 살아온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는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진심으로 아내의 삶을 들여다보면 의외의 성과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정순/한국은퇴연구소 전문위원, 대구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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