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포항제철소 외주파트너사(이하 외주사)의 선정 방식을 창립 47년 만에 공개경쟁 형태로 바꾸기로 함에 따라 경제계에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정치권 등 힘 있는 인사들이 좌지우지하던 포스코를 정상화하겠다는 경영진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이번 경영쇄신안에 대해 외주사들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
수십 년간 혹은 대를 이어가면서 포스코 혜택을 누린 외주사들은 속을 끓이고 있지만, 대다수 포항시민들은 포스코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외주사 선정 방식 변화는 어떻게?
포스코는 다양한 외주사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제철산업을 이끌어왔다. 외주사들은 제철소 안에 상주하며 공장 및 시설 관리, 자재공급, 청소, 운송 등 다양한 분야에 관계하며 포스코와 함께 성장해왔다. 포스코와 계약을 맺게 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오랫동안 자리 보전이 가능하고 납품대금 결제가 원활해 자금 압박도 없다. 외주사로 선정되기만 하면 먹고살 걱정은 잊었다고 할 정도로 안정적이다.
외주사들은 고 박태준 명예회장과 척박한 영일만 백사장에서 포스코를 일군 산업역군들을 주축으로 형성됐다. 제철산업 활황기 시절, 외주사들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황금알'을 낳는 최고의 기업이 됐다.
외주사의 이권이 커질수록 이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도 치열해졌다. 학연'인맥은 기본이고, 정치권까지 나서 압력을 가하며 외주사를 챙겼다. 앞서 이명박정부 아래에서 이뤄진 포스코 비리도 특정 외주사 일감 몰아주기에서 비롯됐고, 현재 진행 중인 포스코 수사도 외주사들과의 유착 및 일감 몰아주기, 불투명한 자금 흐름 등이 큰 이유가 됐다. 포스코와 외주사와의 관계가 포스코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를 고치지 못했다.
포스코는 경영 위기를 타개하고 재도약하기 위해 외주사 선정 방식을 공개경쟁으로 바꿀 필요성이 커졌다. 외주사 선정을 포스코 출신이나 정치권 입김 등을 완전히 배제한 채 포스코의 경영에 얼마나 도움될 것인가만을 따지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외주사들의 수익은 지금보다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지금 외주사보다 더 저렴하고 좋은 품질로 사업을 하겠다는 기업이 있다면 포스코가 손을 잡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외주사 관리도 지금보다 더 철저해진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외주사 계약해지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재무구조 및 품질, 윤리성 등을 철저히 따지게 된다. 외주사 시장에도 무한경쟁이 도입되는 셈이다.
◆제철소 외주사는 어떤 사람들이 운영할까?
포항제철소 외주사는 현재 60개사다. 10개사 정도는 포스코 자회사이고, 6개사는 포스코가 지역협력 차원에서 포항상공회의소를 통해 포항권 상공인들에게 운영권(광양은 40%가량)을 줬다. 28개사 정도는 포스코 간부 출신들이 경영 실권자이고, 3개사는 개인기업이 외주사로 편입됐다.
14곳은 포스코 창립멤버와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거나 지역 정'재계 인사들이 관계할 정도로 후진적이고 왜곡된 구조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과 현역 국회의원 일가도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외주사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포항 정치인 상당수도 외주사 이권을 누렸다. 한 전 시의원은 지분이 없는 상태에서 외주사 회장 명함만 갖고 고액의 연봉을 받았다. 또 다른 전직 시의원도 포스코 출자사 사장 보좌역을 맡아 1억5천만원의 연봉을 타냈다. 현 경북도의회 의원도 포항시의원 시절 포스코 자회사 사장 보좌역으로 회사 사택에 살면서 2억원 가까운 연봉을 수년간 챙기기도 했다.
포스코 출신들도 외주사 대표 및 임원으로 대거 참여하고 있다. 한 포스코 간부 출신 퇴직자는 외주사 대표를 겸하며 개인사업을 벌여 막대한 돈을 벌었고, 또 다른 부장 출신은 외주사 창업 후 후배 포스코 출신에게 자리를 물려주기도 했다. 임원 승진을 못 한 포스코 부장들이 퇴사하면 외주업체 사장으로 들어가고, 5년가량의 기간이 흐르면 후배에게 회사를 물려준 뒤 막대한 주식 차익을 남기고 은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외주사 관계자는 "포스코 그늘 아래 외주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새롭게 생기거나 경영권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 고위직 혹은 유력인사들이 정치권 등에 줄을 대며 자리싸움에 열을 올리는 진풍경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자식들에게 외주사를 물려주지 못하도록 한 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금기도 깨지고 있다. 한 기업은 회장이 고령으로 사업 일선에서 물러난 뒤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기업 일부는 쪼개 매각하고, 나머지는 아들에게 그대로 넘겼다. 또 다른 기업은 정치적 영향력을 등에 업고 외주사를 가업으로 여기며 자식에게 승계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 한 관계자는 "외주사 중에 수십 년이 넘은 회사 대표 대부분은 포스코 창립멤버이거나 고 박태준 명예회장과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다. 포스코 내부에서도 이 사람들이 아들에게 외주사를 물려주면 안 된다고 보고 있지만, 이를 관철시키기가 쉽지 않다"면서 "그간 사업권을 보장받으며 이득을 누려왔다는 걸 스스로 생각하고 원칙을 지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외주사 선정 변경에 대한 시각
외주사 선정과 관련, 공개경쟁을 통해 선발한다는 방침이 알려지자 외주사 관계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현행 외주사 운영이 겨우 직원들 월급 줄 정도의 형편인데다, 숙련된 작업자들을 대거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외주사 관계자는 "검찰 수사 등으로 민감한 시기에 포스코의 이번 조치는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다"며 "포스코가 부실하거나 경영이 잘 되지 않는 외주사 등 옥석을 가려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무엇이 될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등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포스코가 그간 정치인 등 소위 힘있는 인사들을 관리하기 위해 포스코 납품권이나 외주사 대표 혹은 임직원 자리를 챙겨줬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번 포스코의 조치를 경영쇄신에 앞서 '엄청난'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독립기업인 외주사의 경영 승계를 포스코가 간섭하는 것 자체가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들며 '공개경쟁' 방식을 옹호했다.
포항경실련 한 관계자는 "그간 포스코도 원하고, 힘있는 인사도 원해 포스코와 외주사의 비정상적인 협력관계가 설정될 수 있었다"며 "포스코가 정치권 등 외부 압력에 휘둘릴수록 포스코에 악영향이 컸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외주사 선정 방식 변경은 포스코 독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포항 박승혁 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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