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도쿄재판 검증

태평양전쟁 일본 전범을 처벌한 극동국제군사재판(일명 도쿄재판)은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받은 아시아 국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정의의 실현'과 거리가 멀었다. 기소된 A급 전범은 28명에 그쳤고, 이 중 사형당한 전범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포함 7명에 지나지 않았다. B, C급 전범임에도 네덜란드 법정이 236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소련이 3천 명을 처형한 것에 비하면 너무나 가벼운 처벌이었다.

이들 이외에도 A급 전범 못지않은 전쟁범죄를 저지른 전범 혐의자들도 엄청나게 많았으나 모두 면죄부를 받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1931년 만주사변을 기획한 이시하라 간지(石原莞爾)로, 그는 기소준비 단계에서 국제검찰국(IPS)의 면담 조사도 받지 않았다. 또 일본 전시경제를 이끈 닛산그룹의 창업자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 일본 최초의 항공기 제작 회사 나카지마 항공을 설립한 나카지마 지쿠헤이(中島知久平), 미쓰이 재벌의 경영자이자 전쟁 말기 고이소(小磯) 내각의 군수대신이었던 후지와라 긴지로(藤原銀次郞) 등도 기소되지 않았다.

일왕 히로히토는 처음부터 기소대상에서 제외됐다. 일왕을 지키려는 일본 지배층과 용이한 일본 통치를 위해 일왕을 활용하려는 맥아더와 야합의 결과였다. 이런 '음모'에 대해 도쿄재판에 참여한 호주의 윌리엄 웹 판사는 "범죄 수괴를 법정에 세울 수 있음에도 무죄라는 결론이 처음부터 전제됐다"고 비판했다. 히로히토를 처음부터 A급 전범 명단에 올리지 않은 미국, 영국과 달리 호주는 100명의 전범 명단을 제출하면서 히로히토를 포함시켰다.

우리 입장에서 더욱 한이 맺히는 것은 재판에서 조선인 판사나 검사는 한 명도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일본 현대사 전문가 존 다우어 MIT대 교수는 "정도를 벗어난 것"이라며 "이는 식민지 조선에서 수십만의 남녀가 일본의 전쟁기계에 의해 짐승처럼 학대당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한다.

일본 자민당이 도쿄재판과 연합국군총사령부의 점령정책 등을 검증하는 기구를 만든다고 한다. 검증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베 총리가 한국, 중국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역사전쟁'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것은 필시 전쟁 책임 회피와 도쿄재판의 정당성 부인일 것이다. 하지만 도쿄재판은 자민당이 주장하는 의미의 부당성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정당하지 못했다. 정말 검증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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