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론새평] '유감'의 수사학

1963년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1963년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남북 만족시킨 합의문 속 '유감'

南은 '사과' 北은 '교훈'으로 판단

'누가 이겼나' 따질 때 다시 갈등

해석 없는 건조한 언론 보도 필요

대인지뢰의 폭발로 시작된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은 긴급히 열린 고위급 접촉을 통해 일단 해소됐다. 밤을 지새우는 기나긴 협상 끝에 남과 북은 양측 모두를 만족시키는 언어적 표현을 찾아냈다. 바로 '유감'이라는 표현이다. 양측 모두를 만족시켰다는 점에서 이 표현은 외교적 수사의 모범이라 해야 할 것이다. 외교적 수사란 원래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에 쓰이는 언어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합의문 속의 '유감'이라는 표현은 남측에는 물론 '사과'로 받아들여졌다. 막무가내인 북한으로부터 무려 13년 만에 사과를 받아 내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업적인가? 강아지만도 못하나 내시보다 더한 일부 언론들은 이번 합의가 북한에 대한 현 정부의 승리라고 목소리 높여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다. 수미일관한 대북 강경책이 결국 성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유감'이라는 표현은 이렇게 남한의 강경파들을 만족시켰다.

하지만 그 말이 북한에게는 좀 다른 것을 의미했다. 즉, 지뢰가 터진 것이 우리의 잘못은 아니나, 남측에서 자꾸 우리의 잘못이라고 우기니, '사과'하기는 뭐하고, 민족의 화합을 위해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해 '지뢰에 다친 병사들이 안 됐다'고 위로할 테니, 속 좁은 남조선 당국은 마음을 풀고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의 개선에나 나서라는 것이다. 남측보다 3분 앞서 합의문을 서둘러 보도한 것을 보니, 북한도 그 표현에 만족한 모양이다.

하나의 표현으로 양측이 만족했다면, 좋은 일이다. 추석을 맞아 양측이 이산가족 상봉에까지 나선다니,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문제는 굳이 '누가 이겼는지' 따지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정부와 몇몇 언론에서는 이번 합의가 각하의 위대한 영도력의 승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이번 협상의 북측 대표였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이번 합의가 북한 "군대와 인민의 원칙적인 투쟁과 성의 있는 노력의 결과"라고 선언했다.

남은 북이 '사과'를 했다고 보나, 북은 자기들이 남에게 '교훈'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즉 이번 협상에서 자기들이 남측에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 일방적 행동으로 상대 측을 자극할 경우 (…) 있어서는 안 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황병서)을 주었다는 것이다. 부상을 당한 것도 남한의 병사요, 대피를 한 것도 남한의 국민이요, 자기들은 말 한마디('유감')로 바라던 것을 얻었으니, 자기들이 이겼다는 얘기다.

누가 이겼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승자는 없다. 남측은 북의 도발로 신체와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고, 북측은 대북 선전방송으로 신경이 거슬리는 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뿐이다. 물론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하여 남북 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하게 될 그 일을 하는 데에 굳이 지뢰를 묻고 포격을 주고받고 스피커를 틀어댈 필요가 있었을까?

그 모두가 실은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에 들어가는 감정비용이다. 이번 합의는 북한도 원하고, 우리 정부도 원하던 것이다. 정부만이 아니라 야당이 원하고, 시민사회가 원하던 것이다. 속내의 차이를 감추고 공통의 이해만 드러내는 데에 사용된 수사가 바로 '유감'이라는 낱말이다. 이를 굳이 누구의 '승리'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 순간 남북은 그 모든 비용을 초래했던 감정싸움에 다시 돌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에 대해서는 '해석' 없는 건조한 보도가 필요하다. 자존심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자존심 싸움이 벌어지지 않게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다. 언론이 남북의 감정싸움에서 응원단 노릇이나 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부 언론에서 선동하는 것과 달리 강경책을 쓴다고 국민이 더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등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낸 극단적 도발들은 주로 대북 강경책이 실행되는 시기에 발생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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