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과 '베테랑', 올여름 충무로에 활력을 불어넣은 두 편의 빅히트작에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어 눈길을 끈다. 8월 마지막 주 현재 스코어를 살펴보면, '암살'(최동훈 감독, 7월 22일 개봉)이 1천100만 관객을 모으며 빅히트작 반열에 오른 데 이어 '베테랑'(류승완 감독, 8월 5일 개봉)까지 1천만 돌파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 빠른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 화려한 액션을 우수한 영상미로 풀어내 국내 관객의 입맛을 충족시켜 준 충무로의 상업 영화다. 그 외에도 이 두 편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제작자-감독' 부부가 공동작업해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재미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암살'의 최동훈 감독이 제작사 케이퍼 필름을 이끌고 있는 부인 안수현 PD와 작업했고, '베테랑'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도 제작사 외유내강의 대표인 부인 강혜정 PD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상반기부터 할리우드의 기세에 밀려 넉다운된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부부 영화인 두 쌍이 살려주고 있는 셈이다.
◆ '암살' 최동훈 감독-안수현 PD
감독 지망생·직원으로 첫 만남
서로 조언 주고받으며 큰 성장
'도둑들''암살' 메가히트작 발표
흔히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 말한다. 현장 상황의 특이성 때문에 작가의 비중이 커지는 드라마와 달리 영화 촬영장에서는 감독의 능력에 따라 최종본의 완성도가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반면, 감독이 마음 편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프로듀서와 제작사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결국엔 최상의 시너지 효과 창출을 위해 양측이 서로 손잡고 의견을 조율하며 골인점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흔히 이 과정에서 트러블이 발생해 갈라서기도 하고 때론 한쪽의 역할만 부각돼 실패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부부 영화인의 합심은 '찰떡 호흡'으로 인해 성공률을 높일 수도, 또는 심한 의견 다툼으로 영화 외 개인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리스크 요소를 안고 가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단, 장점이 더 부각될 시 최상의 컨디션으로 수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한다.
케이퍼필름이란 회사를 세우고 '도둑들'에 이어 '암살'까지 '1천만 영화' 대열에 올린 최동훈 감독과 안수현 PD는 부부 영화인이 동반작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상승 효과의 최고점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0년 가을, 당시 안수현 PD는 영화사 직원이었고 최동훈은 감독 지망생으로 충무로에서 갖가지 일들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안수현 PD는 기획을 하기 전 마케팅을 할 때부터 영화계에서 손꼽히는 프로페셔널이었고, 미모 순위로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재원. 감독 지망생 최동훈의 눈에도 이런 안수현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최동훈 역시 데뷔 전이었는데도 시나리오 각색 등 여러 작업에 참여하며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던 시기였다.
결국 두 사람은 이때의 만남을 계기로 가까운 친구 사이로, 이어 연인으로 발전했다. 안수현이 본격적으로 프로듀서 활동을 시작하고, 최동훈이 '범죄의 재구성'으로 데뷔 준비를 할 무렵 두 사람의 사이가 특히 돈독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힘든 시기에 서로 기대고 조언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각각 영화계에서 인정받는 인물이 된 2007년 가을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최동훈은 '타짜'의 성공과 함께 스타 감독으로 떠올랐고, 안수현 PD 역시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 등 히트작을 내놓고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을 때였다.
안수현 PD는 결혼 후에도 '박쥐'와 '푸름 소금' 등의 영화를 만들며 프로듀서에서 제작자로 활동 폭을 넓혔다. 최동훈 감독도 '전우치'를 내놓고 또 한 번 우수한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두 사람이 "같이 해보자"고 작당하고 만든 회사가 바로 영화사 케이퍼필름이다. 안수현 PD가 회사를 꾸리고 최동훈 감독이 연출을 맡아 '도둑들'과 '암살'이라는 메가히트작을 발표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되 제작자와 감독 간에 지켜야 할 경계, 그리고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베테랑' 류승완 감독-강혜정 PD
독립영화 워크숍서 만나 연애
신념'실력으로 일군 성공사례
'베를린''베테랑' 히트 퍼레이드
류승완 감독과 강혜정 PD도 외유내강이라는 영화사를 차리고 함께 작품을 내놓고 있다. 회사 이름인 '외유내강'은 밖으로 부드럽고 안으로 강하다는 뜻 외에 바깥에서 '류'승완 감독이, 안에서 '강'혜정 PD가 함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벌써 10년째. '베테랑'을 비롯해 전작 '베를린', 또 '부당거래' '짝패' 등의 작품을 내놓으며 히트 퍼레이드를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드라마틱하다. 1993년 독립영화협회 워크숍에서 조우했고, 남녀관계로 발전해 5년간의 연애기간을 가진 후 1998년 결혼했다. 당시 류승완 감독은 고졸 출신으로 영화 촬영장의 막내 스태프 등 잡일을 하고 있던 20살 청년이었다. 강혜정 PD는 고려대를 나온 23살의 촉망받는 인재였다. 운동권 학생으로 지내던 강혜정이 우연히 독립영화 워크숍 전단을 보고 이 모임에 들어가면서 워크숍 선배였던 류승완과 만나게 됐으니 말 그대로 '운명'이다.
류승완의 프러포즈를 강혜정이 받아들인 후에도 식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명문대 출신의 영화사 여직원과 고등학교를 자퇴한 시동생(류승범)에 연로한 시할머니까지 달고 있는 고졸 출신 스태프의 만남이니 강혜정 PD의 가족을 비롯해 주변의 반대가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승낙을 얻어낸 후 두 사람은 시할머니, 시동생을 대동하고 영세민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2000년 무렵 류승완은 부인 강혜정과 함께 준비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화제의 중심에 서면서 성공적인 감독 데뷔 신고식을 치르게 됐다. 동시에 이 영화에 출연한 동생 류승범까지 동시에 주목받으며 배우 활동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이때 발표한 또 하나의 단편영화 '다찌마와 리'까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류승완은 스타 감독 반열에 올랐다. 고졸 출신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스타 감독이 된 선례를 남기며 영화감독 지망생들의 우상이 됐다. 이어 충무로발 첫 상업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를 발표했으며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 등 '액션'이라는 자신의 장기를 잘 녹여낸 수작으로 폭넓은 연령대에 팬층을 형성했다. 그 사이에 여러 편의 히트작에 특별출연 형식으로 등장해 연기를 하며 스타 감독이란 자신의 배경을 동료 영화인을 위해 활용하는 유쾌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영화사 외유내강의 이름으로 발표한 '짝패'는 수익 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류승완과 강혜정의 색깔을 알리고 호평을 끌어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가 참패하면서 두 사람은 영화작업을 중단하는 등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이어 절치부심 끝에 내놓은 '부당거래'로 흥행뿐 아니라 평단에서도 좋은 반응을 들으며 다시 '부부합작 영화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그리고는 100억원대 규모의 거대 예산이 들어간 '베를린'을 성공시키고, '베테랑'으로 첫 1천만 돌파 사례를 만들며 소위 '파워 영화인'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신념과 실력, 그리고 의지와 노력으로 일궈낸 성공 케이스라 앞으로도 두고두고 영화계 내에 회자될 만한 이야깃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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