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기 일본이 내건 지배 정책 중에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것이 있었다. 내지(內地)와 조선은 한 몸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내지는 일본 본토를 뜻하는 말이었다. 내지라는 말 속에 일본은 내지, 조선은 외지(外地)라는 차별 의식이 이미 들어 있었다. 이런 차별을 하면서도 한 몸, 한마음이라고 우기는 것이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제국 일본은 조선과 일본을 하나의 몸, 하나의 마음으로 엮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에 있었다. 일본과 조선은 한 몸, 한 땅, 한 국가이므로 당연히 언어도 하나이고, 이름 부르는 방식도 하나여야 했다. 이광수가 자신의 이름을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는 일본 이름으로 바꾸고, 소학교 교과목에서 조선어가 사라지고 일본어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어를 국어로 사용한다고 해서 조선인이 일본 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될 수 있었을까. 김사량의 '빛 속으로'(1939)라는 소설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는 조선인이면서 일본 최고 학부인 동경제국대학에 다니는 엘리트 조선인, 하층 일본 남자와 결혼한 조선 여자,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 등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이 알까 전전긍긍한다. 최고의 엘리트건, 하층의 인물이건 이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들은 자신이 일본인으로 오해받으면 받을수록 좀 더 우월한 인간이 된 듯하고, 사회적 입지가 더 강건해진 듯해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조선인이 일본 사회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조선민족의 열등함을 인정한 후, 그런 조선인으로서의 기억과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정체성을 부정하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소설 '빛 속으로' 속의 조선인은 조선인을 향해서 증오를 표하고 폭력적 언사를 내뱉는가 하면, 주변의 시선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일종의 '조선 신경증'에 걸린 모습을 보인다. 자기부정으로 인한 심리적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소설 속 일본인 역시 후유증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열등한 조선인을 우수한 일본인으로 개량하겠다는 의식이 내선일체의 배후에 있는데, 어떻게 일본인 남편이 조선인 아내와 아이를 수치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십 년 동안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제국이 수백 년 동안 식민지를 경영했던 서구 제국에 비해서 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 문화론의 대가 야나부 아키라(柳文章)는 일본의 무리한 동화정책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식민지의 사람과 문화를 전혀 존중하지 않고 무리하게 진행되었던 일본제국의 일방통행적 동화정책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진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70년이 지났다. 일제의 식민지배 기간의 두 배에 해당하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이 시기, 우리는 과연 식민지 시기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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