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국 2600여 명의 피해자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통

9일 대구 중구 서문로1가에 있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대구경북지부 사무실은 어느 때보다 활기찼다. 회원들의 표정과 발걸음도 가벼웠다. 전날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원폭 치료비 소송에서 이홍현 씨가 최종 승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피해자들은 모두 "아팠던 몸과 마음에 위안을 받은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지만 원폭 피해자들에게는 끊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현재 대구경북에는 450여 명의 피폭 피해자가 생존해 있다. 전국적으로는 2천600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피폭 피해자들은 상당수다. 한판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대구경북지부장은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피해자로 등록되는데 당시 피해지역에 살았어도 증거가 없어 등록되지 못한 피해자도 많다"고 말했다.

1945년 8월 6일은 원폭 피해자들에게는 잊히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있다. 이날 사무실을 찾은 권분선(84'여), 권국웅(76) 씨 남매는 승소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당시 순간을 또렷하게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권분선 씨는 "나는 당시 13살이었고 동생은 5살이었다. 학교에 가려고 하던 때 원폭이 투하됐고 집으로 돌아가니 모두 다 무너져 내렸다. 그때부터 나와 갓 태어난 막내를 포함한 4남매가 피폭자로서 고난의 인생을 살았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이 여전히 '끝나지 않는 전쟁' 속에 사는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가는 후유증 탓이다. 한 지부장은 "피해자들은 암이나 고혈압, 치매, 폐렴 등 각종 병을 안고 평생을 산다. 대구경북에만 피폭자 평균 연령이 78세인데 매년 50~60명이 사망한다"고 말했다.

정신적인 아픔도 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사회적 무관심과 차별에다 자녀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져 있다. 한 원폭 피해자는 "예전에는 원폭 피해자라는 사실도 숨기고 살아야 했다. 2, 3세가 기형아로 태어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원해서 당한 것도 아닌데 너무 서러웠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한 피해자도 "어디 가서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 애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번 승소는 이들의 아픔을 다소나마 위로해준 쾌거다. 이홍현 씨의 의지가 피해자들의 삶에 의지를 심어준 셈이다. 원폭 피해자 박기소(76) 씨는 "위암 수술과 수차례 피부병 치료를 받느라 지치고 힘들었다. 나뿐 아니라 모든 피해자가 병 치료로 인해 지쳤을 텐데 의지를 가진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것 같아 힘이 난다"고 말했다.

한 지부장은 "그동안 연간 30만엔(한화로 300만원 정도) 상한액으로는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고 아픈 몸으로 직업을 가질 수도 없어 삶의 질이 무척 떨어졌다"며 "앞으로는 적극적인 치료로 모든 피해자가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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