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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문민정부 출범 '巨山' 외환 위기 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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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시련을 딛고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강단 있는 정치인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거산(巨山)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향년 88세로 서거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더불어 한국 민주주의를 이끌어 오며 상도동과 동교동으로 대별돼 온 쌍두마차가 모두 영면에 들었다.

◆한국 정치사에서 최다 기록 보유

1954년 만 25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5'6'7'8'9'10'13'14대 총선에서 잇따라 당선돼 박준규 전 국회의장'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함께 역대 최다선 국회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 전 대통령은 44년 동안의 정치 인생에서 여야를 넘나들며 모두 5번의 원내총무, 7번의 당수(총재'대표최고위원)를 지냈다. 47세의 최연소 야당 총재 기록(1974년 신민당 총재 선출) 도 갖고 있다. 1979년에는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직 제명을 당하기도 했다. 특히 1983년 5월 가택에 연금된 후 23일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며 신군부에 온몸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직선제 개헌 후 정치 행보 평가 엇갈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김 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다. 문민정부 탄생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던 87년 대선 정국에서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후보와의 야권단일화에 실패해 군사정부 연장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또한, 1990년 1월 군부 출신이 초석을 닦은 민주정의당과의 3당 합당에 참여한 선택을 두고서도 뒷말이 많았다. 당시 민주화 운동 진영에선 김 전 대통령이 '대권욕에 눈이 멀어 변절했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많았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러나 1992년 12월 치러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됐다.

◆개혁에 집중했지만 외환위기로 국민 지탄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시작과 함께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하는 데 성공했으며 전격적인 금융실명제 시행으로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울러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걸음마 단계였던 지방자치제도를 정착시키는 데도 앞장섰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모든 업적은 임기 말 외환위기로 빛이 바랬다. 단군 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경제의 뿌리가 훼손됐다. 임기 말 터져 나온 측근(차남) 국정 개입 논란도 김 전 대통령의 어깨를 한층 더 움츠러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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