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법원이 먼저 나서 아동학대범 단죄 의지 밝혀라

법원이 자식을 학대한 부모를 처벌할 때 피해 아동보다 가해 부모의 입장을 더 고려해 판결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이경은 교수가 2000~2014년까지 가정 아동학대 사건 판결문 14건을 골라 분석한 결과다. "범행이 가볍지 않으나 반성하고 있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점 등을 고려해…"로 이어지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의 이유를 찾은 셈이다.

가해 부모와 관련한 법원의 양형 기준은 '피고인의 상황' '범행의 잔인성' '반성 정도' 등 11개에 이르지만 피해 아동과 관련한 양형 기준은 아동의 '의사' '연령' '자기보호능력 정도' 등 3개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14개 판결문 가운데 피고인의 상황(초범 여부, 연령, 임신, 경제활동 등)을 언급한 판결문은 11개였지만 피해자인 '아동의 의사'가 언급된 판결은 4건이었다. '아동의 연령'(3건)이나, '자기보호 능력'(2건)이 언급된 판결은 더 적었다. 이는 법원이 아이의 입장은 소홀히 한 채 가해 부모의 처벌을 가벼이 할 구실을 찾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법원이 피해 아동보다 가해 부모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다. 지난해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문제는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와 국회는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던 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까지 만들었다. 그런데도 최근에는 자신의 5살 딸을 발로 차 숨지게 한 비정의 아버지에게 법원이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아동학대 치사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아동학대 특례법을 무력화시킨 셈이다.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정의실현은 법원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 법원이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 단호한 단죄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아동학대범들은 더욱 활개를 칠 것이다. 그럴수록 피해 아동들은 법에 호소하기보다는, 피해 사실을 감추고 숨어들게 된다. 법원이 시대를 앞서가지는 못하더라도 발은 맞춰야 한다. 누구보다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야 할 법원이 관행에 젖어 가해자가 큰소리치고, 피해자가 주눅이 드는 세상을 만들어서야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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