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구의 서울생활, 어떻습니까?] 신병관 ㈜삼보기술단 대표

"대구 4차외곽순환도로 설계…도로·철도 민간투자사업 독보적"

신병관 대표는… ▷1963년 경북 영천시 북안면 출생 ▷영천 명주초
신병관 대표는… ▷1963년 경북 영천시 북안면 출생 ▷영천 명주초'영안중, 대구 영남고 졸업 ▷경북대 토목공학과 졸업 ▷(주)삼우기술단 근무 ▷(주)삼보기술단 대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신병관(53) ㈜삼보기술단 대표이사는 토목 전문가다. 도로 및 공항기술사로, 특히 도로 분야에서 국내 손꼽히는 전문가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27년 동안 한 우물만 파고 있다.

대학교 3학년 때 학과 학생회장에다 공과대의 17개 단과대학생회장연합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이 뛰어났다. 졸업 이후 설계회사에 들어가 경험을 쌓아갔으나 뜻밖에 시련이 겹쳤다. 7년 만에 회사는 부도를 맞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아이가 불의의 예방접종 사고를 당해 큰 실의에 빠졌다. 그렇다고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신 대표는 큰아이에 대한 아픈 기억을 오로지 일에 대한 열정과 긍정적 사고로 극복해 나갔다. 옆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 결과 엔지니어의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인 개인 PQ(pre-qualification'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 점수가 톱클래스인 90점을 훌쩍 넘어섰다. 연간 10~20명에 불과한 '도로 및 공항기술사' 자격증도 따냈다. 이로써 분야별 기술사를 총괄할 수 있는 PM(Project Management)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지방대 출신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학력과 경력 등에서 더 나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국내 도로'철도 분야 최강 엔지니어링회사의 대표이사로 발탁됐다. 주변에서는 그의 발탁 요인으로 끊임없는 노력과 탄탄한 실력 외에도 '소통과 배려'를 실천하는 인간 됨됨이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말단 직원에서 20여 년 만에 국내 굴지의 엔지니어링회사 대표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는 신 대표로부터 자신의 삶과 토목설계 분야 얘기를 들었다.

-젊은 시절 어떤 꿈을 꿨나.

▶당초 고향 영천의 단체장이 돼 지역 발전을 이뤄보겠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대학 시절 엔지니어링회사에 들어가 기술자가 되라는 교수의 권유로 설계회사에 들어간 뒤에는 유능한 토목 전문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토목 전문가 100인'에 들어가 이 분야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정부 관료,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대학 토목공학과 교수, 건설사와 엔지니어링회사 등 토목 전문가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100인 안에 꼽힌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은.

▶토목공학을 전공했기에 엔지니어링회사(삼우기술단)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도로 분야 설계에 참여했다. 이 회사는 대구도시철도 1호선을 비롯해 신천 좌안도로, 부산 광안대로도 설계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한 관급공사를 주로 했는데, 설계비는 전체 발주액의 2% 안팎이었다.

-회사를 옮기게 된 배경은.

▶엔지니어링회사로서 명성도 얻고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수주 실적이 높아지면서 무리한 사업 확장이 화근이 됐다. 설계뿐 아니라 감리, 시공까지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하다 부도가 나버렸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고비는.

▶불행은 겹쳐서 닥친다고 했나. 첫 회사가 부도가 날 무렵 큰아들이 태어난 지 100일쯤 됐는데, 보건소 예방접종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 잘못된 주사약이 아이의 뇌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결국 장애 1등급 판정을 받았다. 어처구니가 없었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대응했나.

▶당시 부실한 예방접종으로 사고가 발생해도 이를 피해자가 증명해야 할 판이었다. 법적으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우리 아이와 같은 의료사고가 종종 일어나면서 관련 법규가 정비됐다. 결국 변호사를 선임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관련법에 따르면 명백한 정부 책임이었지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소송이 기각됐다.

-이 사고가 살아오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큰아이 때문에 내가 지금의 위치까지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아이를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아픈 아이 때문에 곁눈을 돌리지 않고 토목에만 전념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삼보기술단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CEO가 이전 같은 회사의 간부였는데, 이전 회사가 부도난 뒤 스카우트됐다. 입사 당시 창립 3년째에 불과했지만, 탄탄한 기술력과 노력으로 매년 성장을 거듭했다. 20년 전 직원이 10여 명에 불과했지만, 현재 400여 명으로 늘었다. 국내 도로와 철도, 해외 사업까지 분야도 크게 확장됐다.

-삼보기술단의 강점과 괄목할 만한 실적은.

▶사회간접자본(SOC) 중 도로, 철도 분야 최대 강자라고 자부한다. 국내 엔지니어링회사 중 도급순위는 15, 16위다.

특히 민간투자사업은 독보적이다. 대다수 회사가 민간투자사업 비율이 10% 미만인데, 우리는 전체의 30% 이상이다.

국내 첫 민간투자사업인 서울~춘천 구간 고속도로(2009년 7월 개통) 설계를 비롯해 국내 최초의 철도 민간제안사업인 서울지하철 신분당선(용산~강남~정자~광교), 대구 4차외곽순환도로(상인~범물), 부산신항고속도로 설계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도맡았다.

-민간투자사업 중 주목할 만한 설계는.

▶서울 우면산터널 설계다. 국내 최초로 충격 완화 기법을 도입했다.

터널 위쪽에 예술의 전당이 있는데, 터널을 뚫을 때 완공 후 차량이 통행하게 되면 예술의 전당 메인 홀에 진동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오스트리아 등 해외 출장을 통해 차량 통행에 따른 진동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우면산 터널을 중심으로 아스팔트 포장과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뉘어 있는데, 아스팔트 포장 400~500m 구간 밑바닥에 고무 패드를 깔았다. 진동 방지 패드 설치 효과는 성공적으로 나타났다.

-민간투자사업의 장점은.

▶정부나 지자체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 사업을 민간에서 수익을 전제로 자본을 투자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민간투자사업에 100조원가량이 투입됐는데, 교통환경 등 SOC 기반을 크게 확충하고 엄청난 물류비를 절감하는 등 국가적으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그동안 진행한 사업에 대한 평가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토목의 날(3월 30일) 행사에서는 토목학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토목구조물' 대상(국토교통부장관상)과 금상을 우리 회사가 한꺼번에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대상은 '울산대교'가 뽑혔는데, 우리와 ㈜유신이 공동 설계하고, 현대건설이 시공했다. 금상으로 뽑힌 세종시 내 '금강4교'(아람찬교)는 우리가 설계하고, SK건설이 시공했다. 한 회사가 같은 해에 대상과 금상을 동시에 받는 경우는 드물다. 예전에 신분당선 설계 작품도 대상을 받았다.

-향후 계획 중인 프로젝트는.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사업을 정부 등에 제안하고, 해외 사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인천 송도~서울~강원 원주~강릉을 잇는 급행열차 선로 건설을 정부에 제안한 상태이다. 전남 목포와 제주도를 연결하는 해저터널도 계획해 놓고 있다.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터키 등 해외 20여 개국의 도로, 철도 건설사업 설계를 직접 시행하거나 참여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의 모든 해저터널과 경전철 현장을 직접 찾아가 조사한 뒤 이를 자료화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래에 만들 터널과 전철을 구상하고 있다.

-어떤 삶을 살아왔나. 성공의 비결은.

▶긍정적인 마음자세다. 항상 즐겁게,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생활하니 일이 술술 풀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되지 않을 일도 되더라.

소통도 중요하다고 본다. 엔지니어링 사업 수주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각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야 가능하기 때문에 상호 생각의 공유를 통한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노력해왔다.

-제2의 인생계획은.

▶현재 우리나라 수명이 80세가 넘는다. 앞으로 5.5년마다 수명이 2년씩 늘어난다고 한다. 그야말로 100세 시대다. 앞으로 20, 30년은 내 분야에서 더 일할 생각이다. 설사 대표이사에서 직급이 낮아진다고 하더라도 전문직이기 때문에 그대로 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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