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선주의 야생화 이야기] 봄철 온 세상을 하얗게 이팝나무

이팝나무 전설에는 가난한 서민의 삶이 배어 있다. 이팝나무에 꽃이 피는 시기가 24절기로 입하(立夏) 무렵이라 서민들이 가장 넘기 힘든 '보릿고개' 시기였던 것이다. 어쩌면 이밥을 실컷 먹고 싶었던 서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이팝나무 전설에 그대로 녹아든 것이 아닌지….

5월 초면 대구, 경산 지역 가로를 장식하는 나무가 있다. 바로 연한 녹색 잎에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것처럼 생긴 이팝나무다. 꽃잎을 자세히 보면 쌀알(이밥)처럼 생겼다. 서양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치 흰 눈이 내린 것 같다 해서 눈꽃나무(snow flowering)라고 부른다.

5월 가정의 달이 되면 항상 생각나는 시가 있다. 지은이는 낭원군(?~1699)으로 선조 임금의 손자이며, 효종의 당숙이다. 내용을 보면 이러하다. "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과저 길러 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 몸 나서 어질소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즉 '어버이 날 낳으셔 어떻게든 어진 사람 되라고 고이고이 길러 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어찌 내가 사람다운 사람 될까 보냐? 이 지극한 은혜 어이 다 갚을꼬?' 하는 말이다.

이 효(孝)와 관련된 나무가 바로 이팝나무이다. 경상도 어느 지역에 가난한 나무꾼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을 앓아서 눈도 희미하고 식사도 잘하지 못하였다.

어느 해 5월 초 어머니는 아들(건규)에게 "얘야, 흰 쌀밥을 먹고 싶구나"라고 했다. 건규는 식사를 하겠다는 말에 너무 반가워 얼른 밥을 지어 올게요"라고 대답하고 부엌으로 나왔다. 하지만 쌀독에 쌀이 조금밖에 없어 걱정이 태산같이 몰려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나서 나무꾼은 마당에 있는 큰 나무의 흰 꽃이 눈에 들어와 이 꽃을 듬뿍 따서 자기 밥그릇에 수북하게 담고, 어머니 밥그릇에는 흰 쌀밥을 가득 담아 들고 들어갔다. "하얀 쌀밥이 먹음직스럽구나."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지내던 어머니는 오랜만에 흰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가 오랜만에 맛있게 식사하시고 만족해하시는 걸 본 나무꾼은 너무 기뻐 큰 소리로 웃었고 아들이 웃자 어머니도 덩달아 웃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임금은 가난한 집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가난하게 보이는 집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웃음소리가 크게 들리는고? 궁금하게 여긴 임금은 신하들을 시켜 그 연유를 알아오게 하였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은 감동하여 나무꾼에게 큰 상을 내렸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 나무를 이밥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나중에 발음이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

이팝나무 전설에는 가난한 서민의 삶이 배어 있다. 이팝나무에 꽃이 피는 시기가 24절기로 입하(立夏) 무렵이라 서민들이 가장 넘기 힘든 '보릿고개' 시기였던 것이다. 어쩌면 이밥을 실컷 먹고 싶었던 서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이팝나무 전설에 그대로 녹아든 것이 아닌지….

이팝나무는 농사의 지표였다. 이팝나무에 치성 드리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 하여 받드는 민속신앙이 있다. 사람들은 이팝나무의 꽃이 많이 피면 풍년, 적게 피면 흉년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팝나무는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이 같은 풍속이 생긴 것이다.

이팝나무와 관련한 다른 설은 이 나무의 꽃이 입하절에 피기 때문에 '입하목'이라고 했고 이 말이 '입하나무' 그리고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경남 양산시의 경우 이팝나무를 시화로 정해서 관리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 도심에는 벚꽃이 지고 이팝나무 꽃들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있다. 이팝나무와 이름이 비슷한 나무도 있다. 조팝나무이다. 사실 조팝나무는 관목(키가 1~2m)이다. 꽃이 작고 수술과 암술이 노란색이어서 미치 조를 섞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여 '조팝나무'로 불렸다.

가로수로 많이 심겨져 있는 이팝나무는 '점쟁이 이팝나무'이다. 올해에도 이팝꽃이 많이 피어 풍년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팝나무야말로 서민의 삶이 스며 있는 꽃이며, 봄이지만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드는 아름답고 소박한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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