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
정래교
밭에서 죽으라고 일을 한 뒤에
나무에 묶인 채로 외롭게 우네
소의 말 아는 사람 어디 좀 없나
저 슬픈 울음소리 통역 좀 해봐
盡力山田後(진력산전후) 孤鳴野樹根(고명야수근)
何由逢介葛(하유봉개갈) 道汝腹中言(도여복중언)
*원 제목: [노우(老牛)] *介葛(개갈): 개갈로(介葛盧). 소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사람.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소에 관한 시의 절창 가운데 하나인 김기택 시인의 '소'의 일부다. 보다시피 소는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눈으로 그렁그렁 글썽이면서 마음을 표현하려 애를 써 본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러므로 소는 '움모 움모' 하고 울어보는 것인데, 그 울음소리가 참 슬프다.
오월도 정말로 환한 오월에 숲 속의 꾀꼬리는 꾀꼴꾀꼴 즐겁게 노래하는데, 왜 소는 저렇게 슬프게 울까? 아마도 소로 태어난 것이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하고 한스러워서 저렇게 울고 있는 것일 게다. 만약 그렇다면 소는 왜 하필 소로 태어났을까?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애초부터 있을 리가 없다. 태어나서 보니 자신이 소였을 뿐이니까. 그것은 태어나서 보니 재벌 2세 금수저였고, 태어나서 보니 가난뱅이 농부의 아들 흙수저였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복불복,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소로 태어났을 뿐이다.
소로 태어났기 때문에 소는 어쩔 수 없이 소로 일생을 살아간다. 오뉴월 땡볕 속에서 콩죽 같은 땀을 흘려가며 죽으라고 밭을 간다.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어이없는 채찍질을 마구 당하다가 집에 돌아와 보면, 송아지가 없다. 주인이 제 아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남의 아들을 팔아먹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는 달을 쳐다보며 움모 움모 운다. 다음 날 다시 밭으로 끌려가 죽으라고 일을 한 뒤에, 나무에 묶인 채로 움모 움모 운다. 그것이 소의 운명이다. 이런 소가 어찌 할 말이 없겠는가? 하지만 도무지 말을 할 수 없어서 움모 움모 하며 울고 있는 것이다.
위의 시를 지은 조선 후기의 빼어난 시인 완암(浣巖) 정래교(鄭來僑'1681~1759). 그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보니 중인(中人)의 아들이었다. 한번 중인은 영원한 중인! 정말 할 말이 많았을 게다. 하지만 세상은 하고 싶은 말을 제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세상! 그래서 그는 이런 시를 지어 움모 움모 하면서 자기 자신을 울고 있는 것이다. "소의 말 아는 사람 어디 좀 없나/ 저 슬픈 울음소리 통역 좀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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