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문학노트] 타인의 시선, 나의 욕망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

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지? 백야가 계속되는 동안은, 덧창 없이는 잠들 수가 없어. 밤이 없으면, 잠들지 않고 일하면 썩 훌륭한 인간이 되어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더라. 저 사람에겐, 자기 인생이 끝없는 하얀 밤처럼 느껴졌나 봐. 기억과 욕망이란, 신의 영역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선택했겠지. 저 사람은, 그림자를 찾고 싶어 하는 거라고 생각해.(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 중에서)

난 분명 독서에 편견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독자들은 편견을 가지고 책을 읽는다. 사람들은 그걸 좋게 표현해서 스키마라고 한다. 그래서 문학상을 받았다고 나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부여하는 작품도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문학상'에는 나 나름대로 관심이 간다. 왠지는 모르겠다. 이상이라는 작가를 좋아해서라고 해두자. '밤이여, 나뉘어라'는 10년 전 2006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정미경이란 소설가를 만난 건 뭐랄까,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김윤식 교수의 '우리 시대의 소설가'라는 책에서 '나릿빛 사진의 추억'이란 작품을 소개받고서이다. 그 소설에서 느꼈던 톡톡 튐을 기대하고 '밤이여, 나뉘어라'를 열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이야기는 무거웠다.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는 타인의 시선과 욕망에 대해서 말한다. 사람들은 욕망의 늪에서 산다. 그 욕망은 내 몫이기도 하고 타인의 몫이기도 하다. 하지만 묘하게도 타인의 욕망과 내 욕망은 다르지 않다. 공통점은 오히려 모두 서로의 타인에게 향하고 있다는 점일 게다. 궁극적으로 말한다면 모든 욕망은 타인의 시선에 의존한다. 결국 어디에도 나는 없다. 나는 허깨비다. 성공한 영화감독인 '나'는 헤어진 지 10년이 넘는 P를 찾는다. P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그는 '나'의 신화였다. '나'의 모든 행동은 P에 의해 규정된다. P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되고 P의 시선이 '나'를 행동하게 만든다. P는 '나'의 존재 이유이다. P는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었다. 그러나 P는 '나'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늘 존재하고 있었다. '나'가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영화를 선택한 것도 P에 의해 규정된 것이었다. P가 가지 않은 길이었기에, P가 이룰 수 없는 일이었기에. 오랜 기다림 속에 비로소 '나'는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그 성공을 인정받기 위해 P를 찾는다. 결국 P와 다른 길을 택한 것도 P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과 동질적인 것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P에게 내 영화를 보여주면서 확인한 것은 P와 자신의 거리일 뿐이다. 그는 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약점을 찾아낸다. 내가 확인한 것은 P가 여전히 멀리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나'는 결코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타인의 시선에 의존한 내 욕망은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이 내가 될 수는 없고, 아무리 내가 몸부림쳐도 '나'는 허깨비일 뿐이다.

반면에 P에게는 타인의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욕망의 대상이 없다. 도저히 도달할 수 없기에 내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타인의 욕망이 P에게는 없다. 하지만 욕망이 없으면 존재의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결국 그는 신의 욕망에 도전한다. 신의 욕망에 도전하는 순간 그 결과는 실패로 예정되어 있다. P가 말한 것처럼 욕망은 이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을 천부적으로 타고난 그에게 있어 그것은 늪이며 자기 스스로 설치한 덫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알코올 중독은 덫에 치인 P의 마지막 몸부림이기도 하다. 일부러 치인 것일 수도 있는.

그러면 이 작품의 귀착점은 어디인가? 한마디로 '없다'이다. 여기에서 뭉크의 그림 '절규'를 만난다. '절규'는 자신의 귀를 막아 자신에게조차 들리지 않는 절규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무심한 행인. 절규가 자신만의 것일 때는 어떠한 소통도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소설에서도 소통을 희망하지는 않는다. 아마 소설 속 '나'도 이전의 삶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P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둘의 만남은 단지 짧았던 에피소드일 뿐이다. 불가능하지만 타인의 시선이 바라는 욕망이 없으면 삶도 없으니까. 그것도 삶이니까. 그런데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작품의 끝 문장은 이렇다. '나는 P를 만나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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