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정성(定性) 평가

고1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거 점수에 들어가요?"라는 말이다. 그렇게 묻는다는 것은 점수에 들어가면 하고, 안 들어가면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교사의 입장에서는 '요놈 봐라'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한편으로는 과목마다 하라는 것이 많아서 피곤하기는 한데, 뭘 어떻게 하면 대학에 합격시켜준다는 기약도 없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대세라고 하니 안 하기는 뭣한 학생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수행평가 해야 한다고, 책 읽어가야 한다고 매일 밤늦게까지 있는 고1 딸을 둔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학력고사 시절이 마음 편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생들이 점수에 집착하는 이유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봉사활동이나 수상 경력, 실장 경력 등을 점수로 환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 방법을 '정량(定量) 평가'라고 하는데, 정량 평가에서는 어디서 어떤 봉사활동을 했건, 실장을 하면서 어떻게 했건 같은 가산점으로 처리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양에 집착을 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입학사정관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교과에서 1등급이면 어떻게 해서 1등급이 되었는지, 봉사활동은 어떤 활동을 했고, 거기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등의 내용을 본다고 한다. 이것을 '정성(定性) 평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상적인 방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학에서는 많은 지원자들 중에 이 학생은 이래서 합격을 시켰고, 저 학생은 이래서 불합격을 시켰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 학생, 학부모가 혼란스럽게 생각을 한다. 비유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야구 선수를 뽑을 때, 잘 맞히고, 장타력도 있고, 수비도 좋고, 발도 빠르고, 예의 바르고, 얼굴까지 잘생긴 선수를 뽑으면 좋겠지만 그런 선수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현실에 있는 선수, 이를테면 불성실하지만 성적이 좋은 나바로와 한국보다 수준 높은 일본 리그에서 성적은 낮지만 성실한 발디리스 중 누구를 뽑느냐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다.

얼마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학생A의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은 '성실하고 차분하게 수업을 잘 듣는 학생'이고 수상은 '1학년 장려, 2학년 장려'다. 학생B의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은 '논리적인 이해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이고 수상은 '1학년 장려, 2학년 우수, 3학년 최우수'다. A는 평범한 멘트, B는 개인적인 평가 부분이 드러나 있다. 수상도 B는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A학생보다 B학생이 우수하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이것을 보면 앞으로 우리나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생들로 넘쳐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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