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견문발검(見蚊拔劍)=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1주일째.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뚜렷하다. 하지만 위 두 속담이 뇌 속에 맴도는 건 왜일까. 아마도 긍정적인 면(청탁 전화 사절, 불필요한 민원인 만남 거절)보다는 부정적인 면(서민경제 타격, 인간관계 위축, 몸사리는 분위기 등)이 더 염려되어서 일 것이다.
법 시행 이후 개인적으로 저녁 약속도 일부러 잡지 않고, 골프약속도 모두 취소했으니 경제적'시간적 측면에서 편해졌다. 그런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냐'는 생각에 뭔가 허전하다. 자주 가는 식당 주인들은 "김영란 법은 밥줄 끊는 법"이라고 한탄했다.
공무원'교사'기자들이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니 세상이 조용한 것 같기도 하다. 공공기관'언론사 주변 식당들도 한산하니, 시끌벅적함도 느낄 수가 없다. 이 법 시행 이후 각종 언론에는 화환 몇 개 없는 썰렁한 결혼식장 모습 또는 차 몇대 없는 골프장 주차장, 파리 날리는 고급식당'유흥가 등이 실렸다.
◆청렴한 세상→썰렁한 세상
전국의 공공기관과 언론사 등에서는 김영란 법에 대처하는 교육을 받고, 청렴서약서까지 쓴 곳도 많다. 일부 기관은 아예 '시범 케이스에 걸리면 안된다'는 취지에서 당분간(언제가 될 지 불분명) 저녁식사 및 술자리 금지, 골프 금지를 비롯해 청탁성 민원인은 아예 만나지도 말 것 등 금기사항을 공식적으로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직장 주변에서는 도시락을 싸오거나, 구내 식당을 이용하는 신풍경까지 생겨났다. 이게 검소하고 좋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하다. 국민들이 공무원'교사'기자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공직이나 언론기관 종사자들이 민원인이나 취재원 만나는 것이 더 무섭다. 끼리끼리 모이는 폐쇄적 문화가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김영란 법 시행 첫날, 어떤 대학생이 교수한테 캔커피를 준 학생을 신고했다. 참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다. 이런 촌극을 만들려고 이 법을 만들었나. 학부모가 학교 담임교사를 만나러 가는데, 음료수 1박스 못사가게 한다면 아마도 빈손이 부끄러워 학교에 가지 않을 정서를 갖고 있는 부모도 많을 것이다. 좋은 기사를 써준 감사의 의미로 식사 한끼 같이 못하게 한다면, 기자 역시 좋은 인연으로 취재원을 만날 수 없다. 이것은 법이 아니라 '정'으로 이어져 온 관행이자 관습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정청탁 관행은 당연히 근절돼야 마땅하지만 한국문화가 갖고 있는 미덕 마저 법의 심판을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
때론 실정법보다 관습법이 앞서는 경우도 있다. 관행이나 기질은 사실 법이나 규정보다 더 무섭다. 몸에 밴 습관이기 때문이다. 기자 초년병 시절에 받아서 안되는 줄 알지만, '차비하라'고 꼬깃꼬깃 만원권 3장을 접어서 두 손에 꼭 쥐어주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차마 되돌려주기가 민망해, 차 기름값으로 사용한 경우가 있었다. 이제 김영란법이 이런 공간까지 부정청탁으로 간주하고 있다. 법이 정을 나누는 따뜻한 공간까지 규제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에이~, 괜히 오해받을 행동말자. 아예 쫌팽이가 되자."고 체념하는 분위기도 있다. '청렴한 세상'을 만들려다, '썰렁한 세상'이 될까 더 겁난다.
◆경상도 기질은 '더치페이 문화'에 대한 거부감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안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법 시행 3일째 되는 날인 지난달 30일 중앙일보 1면에 "더치페이 좋지 않나요? 그렇게 돼야 합니다."는 제목으로 1면에 인터뷰를 했다. 당연한 인터뷰 내용이었지만 그 제목이 마치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왜일까.
'더치페이'가 정착되면 물론 좋다. 하지만 아직은 경상도 사나이 기질에는 '더치페이'가 어색하다. 친구든 지인이든 같이 식사를 하고, 서로 밥값을 내려고 하는 풍경이 더 익숙해서다. 나눠서 내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기계적 균형을 맞추는 것 같아서 더 싫기도 하다. 그래서 더치페이 방법은 잘 몰라도, '1차는 당신(형, 선생님, 친구, 선배 등)이 쏘았으니, 내가 2차를 사겠다'고 말하는 것이 흔하게 볼 수 있는 이 지역 풍토이기도 하다.
사실 산수를 하듯 똑같이 나눠서 내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좀 더 가진 사람이 더 비싼 음식값을 내고, 다소 저렴한 커피값은 상대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 내면 더 좋다. 실제 지인들 뿐 아니라 업무적으로 연관이 있는 인간관계 속에서도 형평성에 맞게 쏘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식대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이라는 세세한 금액 상한선도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다.
김영란 전 위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법안 제안자라고 해도 개선장군도 아닌데 법 시행의 해석과 방향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을 나누기 위해 자연스레 이뤄진 인간관계의 관습과 관행에 대해서까지 너무 세세한 인위적 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있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영국에는 지방 관습법이 있다. 이 법은 옛날부터(실제로는 살아있는 증인이 상기할 수 있는 동안) 평화롭고 지속적으로 시행되었고, 합당'명확하고 의무적이며, 특정지방에 제한될 경우 이를 유효한 것으로 여겨왔다. 이 관습법은 때론 실증법보다 우위에 서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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