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악연은 악연을 낳고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 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습니다."(10월 25일)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데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11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리는 '신뢰'가 말짱 '황'이 될 판이다. 두 차례 대국민 사과에서 버젓이 국민을 속인 탓이다. 그것도 열흘 만에 두 번씩이나. 거짓은 한 달도 안 돼 곧 들통났다. 20일 검찰의 최순실 씨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한 수사 발표를 통해서다.

먼저 문서 유출 거짓 해명이고 다음은 검찰 수사 협조 약속 위반이다. 수사 결과, 대통령은 올 4월까지도 여러 기밀문서를 최 씨에게 넘겼다. 2013년 1월부터 무려 3년 넘도록 말이다. 심부름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통해서다. 검찰 수사 협조 약속도 거짓이었다.

20일은 박 대통령이 생명처럼 아낀 '원칙과 신뢰'의 가치가 한낱 사사로운 인연의 최 씨로 인해 한꺼번에 무너진 날이다. 그것은 1997년 대선 참여와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선에서 뽑혀 본격 정치에 입문하면서 줄곧 지켜온 정치 나침반이었다. 정치생활 20년 만에 나침반 자침이 자력을 잃어 속절없게 된 셈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거짓을 밝힌 검찰 사령탑은 김수남 검찰총장이다. 김 총장은 지난해 12월 박 대통령 손으로 총수에 올랐다. 그런 김 총장이 박 대통령을 헌정 사상 첫 '피의자'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거부했다. 두 사람의 악연(惡緣)이 아닐 수 없다.

악연의 끈은 또 있다. 박 대통령이 1980년대 영남대 재단 이사 시절 저질러진 대학입시 부정 관련이다. 당시 수사 결과 1987년과 1988년 입시 부정(29명)이 밝혀졌고, 김 총장 부친인 김기택 영남대 전 총장은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1988년 4월(1986년 2월 취임) 중도 하차했다. 김 전 총장은 "박근혜는 영남대 이사지만 사실상 이사장"이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결국 박 대통령도 1988년 11월 이사에서 물러난 악연이다.

두 사람의 악연의 끝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의 거짓말 들통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최 씨 악행(惡行)의 폭과 뿌리가 너무나 넓고도 깊어서다. 특히 영남대 재산 처분을 둘러싼 숱한 의혹도 그렇다. 김 총장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이다.

정인열 논설위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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