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지난해,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자대학교 불법특혜 입학 후 내뱉었다고 하는 말이다. 입시와 취업 경쟁에 내몰린 젊은이들의 가슴을 후벼 판, 정유라의 이 한마디만큼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함축하는 표현은 없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격차 사회'로 진입하였고, 그것은 구조적으로 고착화하고 있다.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차이가 커지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이 나라 전체의 부를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더 늘어나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의 수는 연년세세 많아지고 있다. 사회의 안전판이던 중산층은 몰락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활의 불안정과 불확실성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격차 사회가 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착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격차 사회가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돈도 실력이다'라는 말은 그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증언이다. 있는 사람의 자식들은 부모의 힘으로 좋은 학교를 다니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잘 먹고 잘살게 되는 반면, 없는 사람의 아들 딸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희망의 사다리를 찾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오늘의 어려움이 아니라 내일 그것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상황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하면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질 수 있었다. '계층 이동성'이 분명하게 있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도 있었고, 자수성가라는 말도 있었다. 이제 그런 말은 격언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으로 기득권을 대물림하고 있다. 그냥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특권과 반칙을 통해 대물림하고 있다. 이제는 개천의 용도, 자수성가도 나오기가 힘든 이유이다.
부모의 돈이 실력이 되어 특권과 반칙으로 기득권이 대물림되는 사회가 아니라,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공정성이 무너지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혼란은 사회를 파국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공정성이 없으면 사회적 신뢰가 없어지고 사회적 신뢰가 없어지면 사회체제는 지탱할 수 없게 된다. 공정한 경쟁이 전제되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성립할 수도 없다.
출발부터가 불공정한 사회에서 약자는 어떤 희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그런 환경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한다. 공정한 사회란 우선, 경쟁이 대등한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공정한 사회는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의도적 편파'가 필요하다. 재벌과 중소기업이 경쟁한다면 양자가 제대로 겨룰 수 있는 대등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공정한 사회란 경쟁과정이 투명한 사회다. 경쟁과정에 누군가 개입을 하여 경쟁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환경을 만든다면 그것은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경쟁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어떤 학교를 나왔건, 누구의 자식이건, 어느 지역 출신이건 따지지 않고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온전히 그 사람의 실력만으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말하자면 '무지의 베일'이 필요하다. 차별이 없는 다시 말하자면 특권과 반칙이 없는 경쟁이야말로 투명한 경쟁이며 공정한 경쟁인 것이다.
공정한 사회란 경쟁의 결과에 대해 포용적인 사회를 말한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이때, 패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우고 격려하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다. 모든 경쟁에서 패배는 있게 마련이고 누구나 패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패자에게는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포용이 절실하다. 손을 잡아줄 공동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렇다. 공동체다. 지난해, 광장에서 귀에 익은 노래 하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촛불 하나' 지오디의 노래다. '데니'가 랩으로 말문을 연다. "세상엔 우리들보다 가지지 못한 어려운 친구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을 그 친구들을 위해 이 노래를 부릅니다. 힘내라 얘들아!" 노래는 시작도 안 했는데 광장은 벌써 눈물바다다. 힘들어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호영'이 목소리를 높인다. "주저앉으면 안 돼. 세상이 주는 대로 그저 주어진 대로.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주는 대로 그저. 받기만 하면 모든 것은 그대로. 싸울 텐가. 포기할 텐가.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고 말 텐가. 세상 앞에 고개 숙이지 마라. 기죽지 마라. 그리고 우릴 봐라.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서 있을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 잡아줄게."
지오디의 노래는 불공평한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힘든 이웃의 손을 잡으며, 새로운 대한민국은 이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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