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처방전 속 나의 주민번호가 타인 약값으로 줄줄

건부 부정수급액 10년간 8배 증가…병원·약국 환자들 개인정보 줄줄새

약국'병원 등 의료기관의 허술한 개인 정보 관리가 우려를 사고 있다. 다른 사람의 주민번호로 진료받는 사례가 해마다 늘고, 처방전에 담긴 환자 개인 정보가 고스란히 민간업체에 넘어가고 있어서다. 엉뚱한 진료 기록이 남아 2차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주부 박모(49'대구 동구 효목동) 씨는 최근 감기로 동네 의원을 찾았다가 전혀 모르는 병원에서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박 씨는 "누군가 주민번호를 도용해 진료를 받은 것 같은데, 얼마나 도용당했는지 파악조차 어렵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타인 주민번호를 도용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사례는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신분 도용이나 증여, 대여 등을 통한 건강보험 부정수급액은 지난 2006년 2억400만원에서 지난해 16억6천100만원으로 10년간 8배나 증가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신분 도용 또는 대여는 피해자가 모르거나 지인 간에 은밀하게 이뤄져 실제 부정 사용은 훨씬 많을 것"이라며 "도용 피해자는 특정 질병이 있는 것으로 진료 기록에 남기 때문에 민간 보험 가입이나 복지 혜택에서 제외되거나 취업 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의료기관에서 환자 신원 확인을 소홀히 한 탓이 크다. 대구 시내 한 의원 관계자는 "주민등록증이나 건강보험증을 지참하라고 안내하지만 실제로 확인하는 경우는 없다"고 털어놓았다. 환자들의 개인 정보는 약국에서도 줄줄 새고 있다. 처방전 결제 시스템을 설치하는 한 업체는 약국과 계약하면서 '환자 의약품 정보 제공과 보상'이라는 부가계약서를 끼워 넣었다. 진료 정보를 가공해 제3자(요양기관, 제약사 등)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업체가 수집하는 정보는 ▷환자 나이와 성별 ▷약국 우편번호 ▷판매일과 단가 ▷판매량 ▷거래처명 ▷진료과 및 질병코드 등이다. 해당 업체는 이 같은 정보를 수집하는 대가로 약국에 매달 2만원을 지급한다. 하지만 업체 관계자는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구분해 의료 정보를 사고 있지만 이름이나 주민번호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 정보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서울대 의과대 의료정보학과 관계자는 "환자 이름이 없더라도 수집한 정보를 가공하면 누구인지 유추가 가능하다"며 "개인 진료 정보가 상업적 용도로 이용될 경우 환자와 의사는 물론, 건강보험 재정에도 큰 부담을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