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종교와 미신 사이

평양고등보통학교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박 대통령은 '최태민교' 신자

신앙 고백 못 하는 '사교' 불과

교주 딸 남몰래 만날 수밖에

하야 못 하는 것은 그 종교 탓

박근혜 대통령의 종교를 나는 잘 모른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측근의 몇 사람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 전두환은 대통령 시절에는 불교 신자로 알려져 있었고 그런 연줄로 하여 유배지를 백담사로 택했으리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노태우도 불자로 소문나 있었다. 김영삼은 개신교의 장로였고, 충현교회의 김창일 담임목사가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 "교회의 장로 노릇 하시듯 대통령 노릇을 대강 하시면 안 됩니다" 라고 충고했다는 말을 들었다.

김대중은 가톨릭 신자였다. 천주교의 영세를 받았으니까. 그러나 그의 부인은 오래 신촌에 있는 창천감리교회의 교인이었고 김대중이 천주교에 입문한 것은 4'19 뒤 개헌이 단행되어 민주당이 집권하고 장면이 국무총리에 오르던 그 무렵에 민주당 신파에 속한 정치인들이 대거 천주교의 영세를 받은 때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노무현은 뚜렷한 종교가 없었던 것 같다. 종교가 없는 줄 다 알기 때문인지, 그의 종교를 묻는 사람도 없었다. 이명박은 개신교의 장로로 기업인 출신인 데다가 매우 단정한 인물이어서 잘못된 투자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김경준의 죄를 몽땅 뒤집어쓸 뻔했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긴 했지만 '양심선언'까지 할 필요는 없는 얌전한 장로로 청와대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그가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한동안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서울시의 시장으로서 서울을 매우 훌륭한 도시로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이 말에 대해 크게 반발한 것이 일부 불교 지도자들이었는데 그들의 논리는 대개 이런 것이었다. "시장이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다니,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시장의 말 한마디로 기독교인과 불교 신자들 사이에 쑥스러운 언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글과 말로 중재에 나섰던 기억이 새롭다. "그냥 넘어갑시다. 요 다음에 불교 신자가 서울시장에 당선되어, '서울시를 훌륭하게 만들어 부처님께 바치겠습니다' 라고 해도 기독교인들이 아무 말도 안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의 단순한 논리가 '진화'에 다소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헌법으로 '신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대한민국이어서 정당들이 맞붙어 싸우긴 해도 종교 때문에 분쟁이 생긴 일이 없는 이 나라가 아닌가. 그러므로 대통령이 종교가 없다고 해도 탓할 사람은 없다.

5'16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이화여대의 김활란 총장을 만나, "제가 주일학교 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라고 했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박정희는 종교가 없는 군인이었다. 그래도 그런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신은 왜 종교가 없느냐?" 그 누구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종교가 천주교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그는 '성심여고'에 다녔고 '서강대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겼을 것이다. 두 학교가 다 천주교에서 경영하는 교육기관인 데다가 어느 대학에도 갈 수 있는 우등생이었던 그가 '서강대학교'를 선택한 까닭이 그의 종교에 있었다고 내가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알고 보니 박근혜는 '최태민교'의 신자였고 그 연줄로 하여 남모르게 생긴 비밀스러운 이른바 '비선'이 최가의 딸 최순실로 짜여진 것이었다. 경전도 없고 예배 처소도 분명치 않은 최태민교를 종교 연구자들은 '사교'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교'이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사교'의 교주인 최태민의 딸을 대통령은 늦은 시간에 몰래 만나고 그 딸의 비밀스러운 '지도 편달'을 받아가면서 그 '비선'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였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나는 박근혜가 하야를 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 잘못된 종교에 있다고 믿는다. 무당의 신들린 음성이 '하야하라'고 하기 전에는 하야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무슨 꼴이 될 것인가? 아직도 정치판을 굿판으로 착각하고 '국정 농단'이 없었고 따라서 18대 대통령은 무죄라고 주장한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그에게 없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