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말 잘 타기로 유명한 이 기생을 아무리 애를 써도 보지 못하게 되자 풍류객의 애가 탈 대로 타서 심지어 황금정 승마구락부에서 남자처럼 승마복을 입고 말 타는 그녀를 찾아다닌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남복을 입고 모자를 둘러쓰고 키보다 높은 말 위에 앉아 살같이 달리는 늠름한 모양은 환연히 여장군의 풍도가 있었다…."(1925년 11월 5일 자 동아일보 '6년간 소식 없는 현계옥 내력' 중에서)
고구려 옛 사람은 중국 대륙 깊숙이 말로 누볐고 신라 화랑 역시 말 타고 국토를 달렸다. 국토 안팎 산수를 말과 한 몸이 되어 누비며 즐기고 큰 뜻을 다지는 유오산수(遊娛山水)의 풍류(風流)다. 이런 기마 문화는 조선 후기 들어온 근대 승마로 이어졌다. 일제강점 시절 서울 경성에는 '황금정 승마구락부' 같은 곳도 생겼다. 황금정이 오늘날 을지로인 점에 미뤄 서울 시내에 자리 잡은 모양이다.
그런데 당시 기생들은 글, 춤, 음악은 물론 신식 스포츠인 승마도 익히고 즐겼던 듯하다. 신문에 기생의 승마가 화제로 이처럼 보도될 정도였다. 특히 승마하는 여러 기생 중에서도 대구 출신의 현계옥의 멋진 말 타는 모습은 서울 장안 내로라하는 한량의 얼을 빼놓았다. 오죽했으면 손님이 요릿집 예약 때 기생을 부르도록 주문하는 일을 일컫는 '지휘'(指揮)가 3, 4일 전부터 쌓였다고 신문에서까지 소개했겠는가.
가난으로 비록 17세에 대구에서 기생이 됐지만 독립운동가 현정건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현계옥은 무대를 서울로 옮긴 데 이어 결국 연인과 함께 망한 나라,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의 험한 길에 들어서 중국에서 무장 독립단체 의열단(義烈團)에 몸을 맡겼다. 승마나 즐기고 한량과 어울려 보내는 삶이 너무 덧없었던 모양이다. 차라리 연인을 따라 나라에 몸 바치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을 터이다.
장안 최고 승마 기생에서 '여장군의 풍도'로 독립군의 의로운 세월을 보낸 삶이었다. 최근 인기였던 영화 '밀정'에서 그를 비추며 다시 기린 까닭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 승마 기생의 대반전이 아닐 수 없다.
'밀정'으로 만난 그의 승마를 생각하면 지금 온 나라를 뒤집은 정유라의 승마 인생이 씁쓸할 뿐이다. 승마를 대학 부정 입학의 디딤돌로, 그리고 어머니 최순실과 함께 삼성 재벌로부터 수십억원을 받는 등 부정과 비리 미끼로 삼았으니 말이다. 승마로 세상에 짐만 남기는 꼴인 최순실 정유라 모녀의 삶과 이에 놀아난 삼성그룹 모두 한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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