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으니 감사해요."
지난 2013년 11월 성덕원(가명'53) 씨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덕원 씨가 항암화학요법 후유증으로 듬성듬성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술해도 살 확률이 50%도 안 된다고 했을 때 '내가 죽으면 애들은 어쩌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아들, 딸이 그때 중학교 2, 3학년이었으니까."
같은 해 12월 수술 날을 잡고 덕원 씨는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애들 클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아버지께 빌고 또 빌었다.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에겐 병을 숨기고 '위험한 곳에 돈을 벌러 가니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께서 저를 붙들고 울면서 가지 말라고 말리시더라고요. 그때 참 많이 울었습니다."
덕원 씨는 지난날 술로 방황하던 세월이 후회스럽다. "10여 년 전 아내랑 헤어지고 한동안 하루에 소주를 대여섯 병씩 마셨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없겠다는 좌절감 탓이었다. 무엇도 되돌릴 수 없는 지금, 덕원 씨의 바람은 하나다. "큰 욕심 없습니다. 고등학생인 애들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만 곁에 있고 싶어요."
◆사업 실패에 방황…잘 커 준 자식 덕에 행복
지난 2002년 덕원 씨는 결혼 후 대출을 받아 동네에 목욕탕을 차렸다. 하지만 유가 상승이라는 뜻밖의 악재를 만났다. "목욕탕 문 연 지 딱 1년 뒤에 이라크전쟁이 터지면서 기름 값이 뛰더군요. 적자 폭이 점점 커졌죠." 3년 만에 빚을 떠안은 채 목욕탕을 처분했고, 부인과 이혼하면서 두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됐다.
빚에 허덕이며 아이를 키우던 덕원 씨가 가진 것은 건강한 몸뿐이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일을 하다 목디스크질환도 얻었다. 거듭되는 불운과 아이들의 처지가 속상해 술에 취해 잠드는 날도 많아졌다. 덕원 씨는 "애들을 재우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술을 마셨다"며 "이러다 알코올의존증으로 죽겠구나 싶더라"고 했다.
그러던 덕원 씨는 6년 전 무작정 동주민센터를 찾아갔다. 이런 식으로 살아선 안 되겠다 싶었다. 그 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동주민세터에서 자활 근로를 했고 틈틈이 봉사활동도 했다. 술을 끊고 매일 앞산도 올랐다. 덕원 씨는 "살림살이는 어려워도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착하게 자라준 애들을 보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3년간 암투병, 대장암에서 폐로 3차례나 전이돼
덕원 씨를 또 한 번 무너뜨린 건 대장암이었다. 대장암이 발견되자 의료진은 "수술이 가장 급하고, 수술 후에도 항암화학요법을 받아야 한다. 다른 부위에 전이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대장암 판정을 받고 3년간 수술만 3차례, 항암화학요법은 20여 번을 넘게 받았다. 항암화학요법에도 암세포는 폐로 전이되고 말았다. 또다시 수술을 받았고, 기존에 쓰던 항암제가 더는 효과가 없어서 다른 항암제로 바꿔야 했다.
지난해 3월에는 암세포가 양쪽 폐를 점령했다. 3번째 수술에서 왼쪽 폐는 3분의 2를 절제했고 오른쪽 폐는 다섯 군데를 떼어냈다. 같은해 6월에는 오른쪽 폐에 두 곳이나 암세포가 생겼지만 네 번째 수술은 기약 없이 미룬 상태다.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닐 뿐더러 더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미 수술을 3차례 받아 수술비만 1천만원이 넘게 들었고, 약을 바꾼 후 치료를 받은 8개월 동안 약값만 매달 300만원이 나갔다.
3년간 암과 싸우면서 덕원 씨는 "지칠 대로 지쳤다"고 했다. 암이 계속 전이되면서 더는 완치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는다. 은행이나 신용카드 빚으로 파산하는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면서 병원비를 마련하는 것도 더는 무리라고 했다. "너무 힘들어서 그냥 떠나버리고도 싶지만 애들이 발목을 잡아요."
사진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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