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다. 어쩐 일인지 도락심이 발동해 영문도 없이 대구도시철도 3호선을 탔다. 샌프란시스코를 달린다는 트램을 탄다면 이런 기분일까. 거기 트램은 지면 위를 달리니까 틀림없이 3호선보다는 전망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종점에 다다랐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칠곡 동북지방통계청에 걸린 전광판의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비정상의 정상화 통계청이 앞장서겠습니다.'
한참 봤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니?'아무리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정부는 사회 내의 온갖 부패와 적폐, 잘못된 관행과 같은 것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 정상으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정부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비정상'이 '정상'을 대신하게 된다는 뜻으로도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비정상의 정상화'란 말은 유인 우주선 '스페이스 셔틀 콜롬비아'의 공중분해 사고 조사보고서에 처음 등장한 말이다. 이 보고서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은 '뭔가 잘못돼 있지만 그게 일상화되어 지속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정상인 상태로 인지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정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 즉 비정상을 척결하겠다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 의미인 것이다.
말하자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은 분단 상황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이 오래 지속되어 자연스러운 것인 양 정상화되어 버린 경우를 표현할 때 잘 어울리는 말이다. 만약 비정상적인 어떤 상황을 다시 정상화시키겠다는 뜻으로 이 말을 쓰고 싶었으면, 차라리 범죄와의 전쟁 같은 말처럼, 비정상과의 전쟁 혹은 비정상의 개선 등으로 써야 한다. 목적격 조사(을/를)를 쓸 자리에 관형격 조사(의)를 썼기 때문에 모호한 말이 되고 만 것이다.
백번 양보해 이 말을 정부의 의도대로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적으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과연 우리 정부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능력은 있는 걸까? 작금의 탄핵 정국을 보건대 어쩌면 가장 비정상적이었던 것은 정부 자신이었고 그래서 어쩌면 그토록 비정상의 정상화에 앞장서겠다고 외친 것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어떤 것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도시철도 3호선을 탔던 날, 사람은 역시 여러 시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동차로 도로 위만 다녔다면 지상철에서만 볼 수 있는 저 말도 안 되는 말을 어찌 볼 수 있었겠나.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다. 나는 비정상이니, 정부는 약속한 대로 부디 비정상인 나를 '정상'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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