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16년은 러시아인들에게도 복잡한 한 해였다. 지난 12월 이르쿠츠크 근교에서 가짜 보드카를 마시고 5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2월 25일엔 비행기가 흑해에 추락하여 시리아로 위문 공연을 가던 유서 깊은 '붉은 군대 합창단' 단원들 대다수가 희생되었다. 그뿐인가, 미국 대선 해킹 관련 의혹으로 오바마 정부는 러시아 외교관과 그 가족들을 대거 추방했다. 소치 올림픽 참가 선수들에게 조직적으로 약물을 투여했다는 도핑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게다가 21세기 들어 가장 혹독한 한파가 연일 모스크바를 강타하고 있다는 등, 우울한 소식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와중에도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절 새해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소련 시절부터의 전통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신년 인사를 발표했다. 매년 12월 31일 자정 직전 국민에게 전하는 신년 인사는 푸틴에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999년 12월 31일 정오, 아직 임기가 남아 있던 옐친은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하고 새로운 세기를 새 인물과 맞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석 달 후 대선까지 총리 푸틴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것이라고 말이다. 12시간도 지나지 않은 바로 그날 밤 푸틴은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첫 신년 인사를 하게 되었다. 자신도 '옐친의 신년 인사 듣기를 기대했는데' 예상도 못 한 자리에 섰다던 푸틴은 새해는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며 그 꿈을 이루길 바란다는 평범하지만 의미심장한 말을 전한다. 그때 그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모르지만, 푸틴과 함께 밀레니엄을 맞이했던 러시아인들은 17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의 신년 인사를 듣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7년 신년 인사를 하는 푸틴의 어조는 복잡한 국내외 환경에도 불구하고 작년만큼 비장하지 않고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최근 러시아와 푸틴의 행보는 어찌 보면 이러한 여유로움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과 그 가족들의 추방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극단적 조치에 대한 대응이 그것이다. 자국 외교관 추방에 대해서는 유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관례이나 푸틴은 허를 찌르는 대응을 했다. 추방된 외교관들이 새해를 모국에서 맞게 된 것은 좋은 일이며, 자신은 미국 외교관들을 추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오히려 크렘린의 신년 크리스마스 파티에 미국 외교관 자녀들을 초청함으로써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외교 법칙을 깨뜨리고 관용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러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멋지다! 나는 푸틴이 지혜롭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칭찬하면서 향후 두 지도자의 밀월 가능성을 예측게 했다.
2017년은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비록 공산주의 체제는 포기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혁명 100주년 기념행사를 차질 없이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사실 유럽의 변방에 불과했던 러시아가 세계 정치 무대에 강대국으로 등장한 것은 공산주의 시절이었다. 2차 대전 승전국이 된 소련은 미국과 더불어 20세기 세계 정치의 양대 진영을 책임지는 한 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경험은 길지 않았다.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고, 연방은 해체되었으며, 경제난과 잦은 전쟁으로 국민들은 극심한 생활고와 테러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푸틴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한 메시아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푸틴의 러시아는 과거 영광의 기억을 재현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시리아에서는 이미 주도권을 쥐었다. 유럽과는 반목하고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중국 및 일본과 긴밀한 정치적 경제적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필리핀의 두테르테는 오랜 우방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친러 정책을 공언했다.
혁명 100주년이 되는 2017년, 푸틴의 러시아가 어떤 식으로든 세계 질서 개편의 새로운 한 축을 담당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누구나 조금은 마법사가 될 수도 있다"는 푸틴의 신년 기획은 무엇일까? 우리 역시도 여러 방면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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