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제왕적 국회'는 어쩌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는 현행 헌법 하의 대통령이 '제왕'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개헌 논의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기로 모이고 있다. 대통령에게서 제왕적 권력을 박탈하면 탄핵을 불러온 '최순실 국정 농단' 같은 사태는 없을 것이란 논리다. 소박한 제도 만능주의다. 최순실 사태는 대통령이 제왕적이어서가 아니라 대통령 권력을 올바로 행사하지 못한 인치(人治)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제도만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모든 것이 잘 굴러갈 것이란 믿음보다 더 안이한 것은 없다. 제도는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의 손을 통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제도도 인간의 고안물인 이상 완벽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인치의 가능성은 그 어떤 제도도 예외일 수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헌법만 지켰다면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헌법이 무슨 죄가 있느냐"는 문재인의 개헌 반대 논리는 차기 대선 '게임의 룰'을 바꾸기 싫다는 속셈만 아니라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개헌 논의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회 권력의 제한에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점이다. 현행 헌법에서 '제왕'이기로 치자면 대통령보다 국회가 훨씬 더 하다. 대통령은 국회의 협조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2011년에 제출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예의 하나일 뿐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무기가 '국회선진화법'이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의사결정 무능력 양산'의 장치다. 이 법이 없어지지 않는 한 대통령은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려면 국회에 구걸해야 한다. 물론 구걸도 통할 수 있다. 그 전제는 '국회가 정략과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다면'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에는 그런 '큰 그림'이 없다. 모든 행동 기준을 자기 진영의 입맛에 맞추는 당파성만 판을 칠 뿐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야당의 집요한 반대와 폐기 시도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당파적 국회 지형도 아래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회 권력과 대등한 위치에 서지 못한다. 이는 현행 헌법에 구조화돼 있다. 국회는 대통령을 탄핵하고 장관의 해임을 요구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국회 해산권이 없다. 여기에다 국회는 국정감사'조사권도 있다. 말 그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국회 해산권이 없는 대통령이 국회에 대해 얼마나 '을'(乙)인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인정했다.

국회가 대통령에 대해서만 '갑'(甲)인 것은 아니다. 국민에게도 '갑'이다. 국회의원은 겉으로는 '국민의 종'임을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국민 위에 군림한다. 주민소환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잘못해도 국민은 파면할 수 없다. 국회의 권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공천권이란 또 하나의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국회 권력에 대한 지방 예속'의 제도화다.

입법권의 남용은 더 심각한 문제다. 현행 헌법 하에서 국회의 입법권은 무제한적이다. 국회가 정하면 무조건 법이다. 이를 제어하는 장치는 대통령의 거부권뿐이다. 하지만 국회가 쏟아내는 법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외국은 다르다. 프랑스는 의원입법을 다층적(多層的)으로 규제한다. 법안 제출 때 입법영향분석서 첨부를 의무화하는 것은 물론 헌법재판소가 사전 위헌 심사를 한다. 일본도 행정부가 행정입법을 정부가 제정할 수 있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 의회는 재해 긴급사태, 건강보험 의료비, 국가행정조직 등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행정입법에 관여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국회와 같은 '입법 독재'는 꿈도 못 꾼다.

이런 사실로부터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 '제왕적 대통령제' 타파를 내세운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근본적으로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국회'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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