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세렝게티의 가젤

아프리카 세렝게티 대평원은 약육강식의 현장을 가장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는 늘 죽음의 질주가 벌어진다. 먹느냐 먹히느냐 목숨 건 달리기이다.

아프리카에 이런 속담이 있다. '매일 아침 가젤(작은 영양)이 눈을 뜬다. 가젤은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매일 아침 사자 또한 눈을 뜬다. 사자는 가장 느리게 달리는 가젤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어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포식자들은 약하고 병든 개체부터 노린다. 사냥 성공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생동물은 아파도 티를 잘 안 내며 부상'통증 등을 감춘다. 이 같은 본능 때문에 반려동물이 아파도 사람은 쉽게 눈치채지 못 한다. 오로지 인간만이 고통을 유별나게 표현한다. 인간 사회에서는 상대방의 고통을 인식하는 것이 공감과 소통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러나 공감 능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공감 불능자에 가깝다. 냉혹한 그들이 충돌하는 지대가 있다. 그곳은 바로 정치권이고, 외연을 더 넓혀보면 국제 외교 무대다. 이곳은 세렝게티 또는 정글과 비슷하다. 거기에 감성이나 공감, 동정이 들어설 여지는 극히 적다. 국제 관계에서 감성과 동정이 통했다면 유사 이래 그 많은 전쟁과 살육, 약탈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북핵과 사드(THAAD) 배치, 위안부 협상, 경제 위기 등 퍼펙트 스톰이 떼 지어 몰려오는 형국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으로 둘러싸인 동북아 정세는 세렝게티를 떠올리게 한다. 열강이 사자라면 우리나라는 가젤이다.

열강은 우리나라의 국정 공백과 혼돈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한반도를 상대국 견제용 바둑돌로 삼으려는 속내를 우리는 읽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픈 티 팍팍 내는 가젤 같다. 위안부 합의 문제를 놓고 통화 스와프 중단 등으로 겁박하는 일본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장을 찾은 야당 인사는 경제 보복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어려운 처지라며 앓는 소리를 했다.

외교는 상대방의 수를 먼저 읽고, 속으로 칼을 품었으되 겉으로 웃고, 때로는 허풍에 가까운 결기를 보여야 하는 고도의 정치 게임이다. 세렝게티의 느려 터진 가젤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