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급성 골수성 백혈병 양수광 씨

"아픈 부모 큰 짐…등골휘는 아들 볼 면목없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양수광(가명) 씨가 아내를 만나러 재활병원을 찾았다. 아내는 2009년 교통사고로 뇌 축색이 손상돼 근력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흐려졌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양수광(가명) 씨가 아내를 만나러 재활병원을 찾았다. 아내는 2009년 교통사고로 뇌 축색이 손상돼 근력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흐려졌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양수광(가명'59) 씨가 항암화학요법 치료를 마치고 아내가 입원 중인 재활병원을 찾았다. 아내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혼자선 거동할 수 없고 주변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 수광 씨는 오랜만에 만난 아내를 바라보며 말없이 손을 잡았다. "얼굴이 퉁퉁 부었네." 수광 씨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아내가 힘겹게 눈을 떴다. 아내의 눈에서 이내 눈물이 흘렀다.

수광 씨는 "외아들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한창 인생이 꽃필 나이인 30대 초반의 아들은 '아픈 부모'라는 짐을 졌다. 아들은 하루에 14시간씩 일하며 번 돈으로 부모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모두 감당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 "오죽하면 10년 전에 사준 옷을 지금도 입을까…. 그러면서도 아들은 '전 괜찮으니 제 걱정은 마시라'고 해요." 수광 씨는 매일 아들을 위해 조촐한 아침상을 차린다. "고생하는 아들에게 아픈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게 달리 없네요."

◆교통사고로 몸져누운 아내…병명을 아는데만 2년 걸려

수광 씨의 아내가 병상에 누운 지는 8년을 헤아린다. 인근 전통시장에 장을 보러 갔던 아내는 좌판 앞에 앉아있다가 후진하던 자동차에 치였다. 외상은 없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몸살을 앓았다. 고통은 갈수록 심해졌고 자세를 바꾸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휠체어를 타고 교회에 간 날, 아내는 오래된 지인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그제야 아내의 상태가 심상찮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광 씨는 아내와 함께 대학병원을 전전했다. 그렇게 병명을 진단받는데만 2년이 걸렸다. 병명은 '외상성 뇌신경 축색손상'. 감각 정보를 전달하는 뇌의 축색에 이상이 생기면서 근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흐려지는 질환이다.

수광 씨는 "아내가 아프면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개인택시를 몰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아내의 병명이라도 알기 위해 온갖 검사도 다 받았다. 진단 결과는 나왔지만 교통사고가 원인이 아니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사와 싸워야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수광 씨마저 쓰러뜨렸다. 수광 씨는 지난 2014년 6월 고열로 실려간 병원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부모가 쓰러지자 아들은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고 병간호에 나섰다. 사직서를 내고 돌아온 아들은 "직장은 잃어도 되지만 아버지를 잃을 순 없다. 제발 옆에 계셔만 달라"며 울었다.

◆골수성 백혈병 재발…수술비 마련은 막막

치료 경과가 좋았던 덕에 수광 씨는 7개월 만에 퇴원했다. 병원비는 개인택시면허를 팔아 정산했고 아들은 다시 직장을 구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난 듯했죠. 이제 아내만 나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어요." 수광 씨는 완치되지 않은 몸으로 재활병원에 입원한 아내 곁을 24시간 지켰다. 간이침상에서 새우잠을 잤고, 식사는 이웃이 가져다준 무료급식으로 때웠다. 직장을 구한 아들은 어머니의 병원비에 한 푼이라도 보태려 보일러도 켜지 않고 겨울을 났고, 교통비 한 푼이라도 아끼려 애를 썼다.

악착같이 버티던 부자(父子)에게 또다시 악몽이 닥쳤다. 지난해 10월 수광 씨의 백혈병이 재발한 것이다. 재입원 후 항암화학요법을 두 차례 받았지만 의사는 "조혈모세포이식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수광 씨는 "아내 병원비만 매달 200만원이 넘게 나가는데, 내 수술비도 2천만원 가까이 든다"면서 "아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수광 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골수 기증자가 나타난 것만 해도 감사하다"며 "백혈병에 걸리기 전에 장기기증 신청을 한 덕분에 복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문제는 병원비다. "장기 기증 신청을 할 땐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제가 도움을 받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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