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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의 에세이 산책] 길(路) 명칭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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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이 '대구'로, '모래내'가 '사천'으로, '가마뫼'가 '부산'으로, 내가 태어난 '밤골'이 '율동'으로 바뀌더니 이제 온 나라가 '길'(路'로)로 둔갑하고 있다. 이제 시골 마을조차 사람들이 붙박이로 자리 잡고 사는 곳이 아니라 너도나도 오가는 길바닥이 되고 말았다. 먼 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이들이 보기에 마을 이름을 '길'(프랑스의 '뤼', 독일의 '슈트라쎄', 미국의 '스트리트')로 붙인 나라들이 다들 잘살고 있어서, 우리도 그런 이름을 본뜨면 저절로 '선진국'이 되리라고 믿어서 이런 짓을 하고 있나? 어떤 머리에서 이 '행정구역 개편'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으되, 누구 좋으라고 이런 짓 저지르나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치민다.

예로부터 서민들은 땅 이름이 바뀌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멀쩡한 땅 이름, 그것도 제가 사는 마을 이름을 그곳에 사는 사람들 뜻과는 달리 하루아침에 '행정명령'으로 바꾸는 사람들은 남의 땅을 새로 빼앗은 '침략자'나 '외세'에 등을 대고 있는 '힘센 놈'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론 우리 마을 '밤골'을 '율동'으로 바꾼 '면서기'들은 '일본놈'의 앞잡이들이었다.

'길'이라니? 시골길은 구불구불하기 마련이다. 흐르는 강줄기가 구불구불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땅의 본디 모습을 따르다 보면 길이 구부러질 수밖에 없다. 물길도 골목길도 고샅길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 이른바 '신작로'를 닦은 사람들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었다. 그 '새로 만든 길'(新作路'신작로)을 두고 우리 할매 할배들은 나라 잃은 슬픔을 곱절로 느껴야 했다. 먼저 신작로가 생기면서 멀쩡한 논과 밭이 두 동강이 나고, 아스팔트로 도배를 하기 전이어서 해마다 골이 파이고 허물어지는 그 길을 고치고 고르느라 일손을 뺏겨야 했다. '하이야' '다꾸시' '도라꾸'에 치어 죽거나 다치는 이들도 생겨나고, 그 길 따라 몸 팔러 '대처'(도시)로 떠나는 아들 딸의 초라한 뒷모습도 보아야 했다.

새로 계획되어 바둑판처럼 반듯반듯 줄이 쳐지는 '신도시'들에 무슨 '로', 무슨 '가'로 이름 붙이는 것까지 말릴 생각은 없다. 그게 편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그러나 새로 바뀐 '행정구역'의 '지번'(地番)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우편 배달부나 택시 운전사를 생각해서라도 모든 마을 명칭을 '로'로, '길'로 바꾸는 짓은 멈췄으면 한다.

왜 새삼스럽게 이런 짓을 벌이는가? 멀쩡하게 한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을 들쑤셔서 길바닥에 나앉게 하는 게 누구에게 도움이 되나? 그동안 일껏 '좌측통행'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우측통행'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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