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11개 수업 들을 만큼 바빠
틈틈이 구연동화·연극 봉사도 병행
홀로 삼 남매 키운 시어머니에 감명
생전 다니던 복지관서 봉사'근면 배워
미술 전공한 며느리도 대이어 봉사
공유하는 것 많으면 고부관계에 도움
고부 3대가 같은 노인복지관에서 동문수학(?)했다. 한 지붕 아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살기도 힘든데 고부가 복지관까지 함께 다닌다면 혹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우광순(70) 씨 가족은 시어머니부터 며느리, 손자며느리가 같은 복지관을 이용하면서 고부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자랑했다.
◆피란으로 맺어진 고부 인연
"일주일 동안 3곳에서 11개 수업을 들어요." 검도부터 사군자, 요가, 탁구, 중국어 등 과목도 다양하다. 여느 10대 학생의 일상이 아니라 올해 일흔이 넘은 우 씨 이야기이다. 한때 유엔 사무총장의 15분 단위 스케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대구 남구 대명동에선 우 씨가 유엔 사무총장에 버금가는 빼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우 씨는 나이가 들수록 정적인 수련과 동적인 운동을 겸해야 건강을 챙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침에는 사군자를 그리고 오후에는 검도를 하거나 태극권 수련을 한다. 또 틈틈이 복지관이나 문화전당에서 구연동화나 연극 봉사도 병행하고 있다. 그녀는 왜 이렇게 부지런해진 걸까?
우 씨의 고향은 서울이다. 6'25전쟁 때 가족이 대구로 피란 왔다. 지역에 연고가 없다 보니 온 가족이 각자 살길을 찾아야 했고 우 씨도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우 씨는 배고픔보다 배움에 대한 갈급함이 더 컸다. 학교에 다닐 때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두 읽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은사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졸업 후엔 추천을 받아 대구한의대의 전신인 제한한의원에 취직했다. 책 읽는 습관을 계속 유지하면서 현재는 대구시 새마을문고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우 씨는 부지런한 시어머니 모습에 감명받아 결혼을 결심했다. 우 씨 부모님은 전쟁 때 외지로 떠밀려와 갖은 고생을 다 했다. 시어머니 또한 홀로 삼 남매를 건사했던 것이다. 남편은 우 씨와 처음 만났을 때도 시어머니가 공장에서 일하며 자식들을 키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새 식구인 며느리도 우 씨 마음에 쏙 들었다. 며느리는 4대가 모여 사는 집에서 살림을 맡으면서 남편 학업을 뒷바라지하고 복지관에서 봉사할 정도로 부지런하다고 우 씨는 자랑했다.
◆고부 3대가 노인복지관에서 만나다
우 씨의 시어머니는 2000년 12월 대덕노인종합복지관 창립 수강생으로 7년간 복지관을 이용했다. 우 씨는 복지관 활동을 좋아하는 시어머니를 위해 이곳에서 연극 봉사를 시작했다. 우 씨의 적극적인 모습을 눈여겨본 복지관장은 함께 일할 것을 권유했다. 이후 그녀는 구연동화 봉사를 맡게 됐다. 봉사를 시작한 지 2년 뒤부터는 시어머니와 수업을 같이 들었다. 2007년 우 씨의 시어머니가 고인(故人)이 되면서 복지관을 떠났지만, 이번에는 우씨의 며느리가 복지관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며느리는 홀몸노인에게 반찬을 나누어 주거나 차량 봉사 등의 일을 3년간 맡았다. 현재 며느리는 학업을 이어가면서 봉사활동을 잠시 쉬고 있지만 미술 심리 치료를 공부해 다시 복지관에서 봉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우 씨에게 매일 보는 얼굴을 집 밖에서까지 보는 게 불편하지 않으냐고 묻자 "가족이 안팎의 모습이 달라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다 알고 있어 아주 편하다"고 말했다. 우 씨의 며느리도 "밖에서 활기차게 활동하시는 어머님을 보면 젊은 저한테도 좋은 자극이 된다"고 했다.
◆노인이기 때문에 부지런해야
우 씨가 노인들이 젊은이보다 부지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대부분의 70, 80대 노인들은 유년기 시절 영양 섭취가 고르지 못해 나이가 들면 건강관리에 더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을 때도 건강을 잃으면 되찾기 힘든데 노인들은 몇 배로 더 노력해야 건강해질 수 있어요." 둘째, 자식을 위해서다. 우 씨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자녀가 근면함을 잃지 않을까 걱정했다. 부모가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 씨는 고부 사이에도 공유하는 것이 많아지면 관계가 더 좋아진다고 말한다. "고부가 바깥에서 같이 활동하면 오히려 집에 있을 때보다 서로가 더욱 소중해집니다. 내 가족이 밖에서도 나와 함께해 주면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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