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이경종 선생님, 잊지 않겠습니다.

사흘 동안 내리던 눈이 그쳤다. 섬은 흑과 백의 대조를 이루며 한 폭의 수묵화로 남았다. 섬 곳곳에 햇살이 고르게 비추는 날, 우리는 섬의 북쪽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에메랄드 빛의 겨울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울릉도 천부의 바다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서른다섯 살의 선생님 이야기가 있다. 이미 사십여 년이 흘렀고, 수억 겁의 세월이 다시 흐른다 해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저기, 천부 앞바다에 서려 있다.

1976년 1월 17일, 울릉도에 폭설이 쏟아졌다. 동'서'남'북 한 치도 예상할 수 없는 섬의 일기 속에 선생님은 전날 벼랑길을 걸어 천부에서 30㎞ 떨어진 도동으로 향했다. 6학년 담임이었던 선생님은 학비가 없어 중학교 입학을 포기하려는 두 제자의 등록금을 내고, 17일 오후 4시 무렵 만덕호에 오른다. 만덕호는 57명의 사람과 생필품을 싣고 도동항을 출발해 섬의 북쪽 오지마을 천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천부 앞바다는 북서풍의 영향으로 파도가 높고 거칠었다. 겨우 6t 남짓한 만덕호가 천부 선착장을 눈앞에 두고 몇 차례 파도를 맞아 결국 전복되었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바다로 흩어졌다. 학창시절 수영선수로 활동했던 선생님은 무사히 선착장에 도착하지만,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두 제자를 보고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선생님도, 제자들도, 그리고 서른일곱 명의 사람들도 영원히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 2017년 1월 17일. 고(故) 이경종 선생님 41주기 추모식이 천부초등학교에서 열렸다.

눈 덮인 운동장을 가로질러 우측 계단을 오르면 나무 그늘 아래 자리 잡은 작은 추모비를 만난다. 평소 입담이 없으셨다던 선생님의 모습처럼 추모비는 오랜 세월 저리도 조용히 자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거룩하게 묵념을 올리고 새하얀 국화를 헌화한다. 무슨 말로도 감사함을 대신할 수 없지만 제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던진 선생님의 숭고한 이야기를 영원히 잊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하얀 화강암 위에 반달형의 검은 돌이 동그란 두 개의 돌을 안고 있는 순직비의 형상은 바로 두 제자를 안고 있던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이다.

선생님! 듣고 계신가요? 비문을 낭독하는, 추모사를 낭독하는 목소리를요. 오늘 우리는 선생님의 거룩한 추모비 앞에서 눈을 감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자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셨던 선생님의 이야기는 오늘에서 내일로, 또다시 내일로 우리의 입에서 입으로 영원히 퍼져 나갈 것입니다.

-2017년 1월 17일 울릉도 북쪽 천부초등학교에서 참스승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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