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조용한 하루였다-공지영의 '조용한 나날'
이유는 오직 하나, 사랑하고 있으니까 상처 입히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므로. 무엇이 그에게 가장 상처 입힐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순간에 언제나 더 사랑한 사람이, 더 많이 드러낸 사람이 더 상처 입는다. ……하지만 내가 냉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生)에 지불해야 할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고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알게 되었다. 더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공지영 '조용한 나날' 부분)
오랜만에 공지영의 단편집을 다시 읽었다.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1999, 창비). 개인적으로는 공지영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집이다. 우리는 '조용한 나날'을 산다. 아침에 일어나고 일터로 나가 반복되는 하루를 보낸다. 저녁이 되면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온다. 이따금 익숙하지 못한 일들도 일어나지만 그것도 실상 별거 아니다. 이따금 타인에게 말걸기를 시도해 보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다시 그 자리다.
무의미한 관계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상처가 없다. 상처는 치열한 삶의 결과이고, 상처가 많다는 건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다. 사랑한다는 건 상처 입는 것이고 상처 입히는 행위다. 더 많이 드러낸 사람,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의 상처가 더욱 크고 깊다. 하지만 더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상 공지영의 아픔은 여기에 있다. 공지영을 바라보는 내 아픔도 여기에 있다. 더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더 사랑할수록 더 많은 상처를 입는다는 그러한 진실이 아프다. 그 대상이 국가든 민족이든 민주주의든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든 다를 바가 없다. 언제나 남은 자는 나이고 모든 대상들은 저만치에서 뛰어가고 있다. 열심히 뛰어가면 그들은 날개를 달고 날아가 버린다. 난 날 수 있는 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까. 남아서 모든 흔적을 치워야 하는 게 내가 서 있는 자리다. 그래서 아프다.
며칠 전 우연히 만난 선배와 나눈 대화. "괜찮지요?" "그럼. 나야 괜찮지." "죄송해요." "아니야. 모든 사람은 자신이 만드는 풍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야. 난 여기에 있고 넌 거기에 있으면 되는 거야."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삭막한 콘크리트 위에서 선배는 선배만의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 잘 사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래도 나는 살아간다. 이 세상에 진실도 정의도 영원한 것도 없다는 진실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마지막으로 남은 자가 되어 더럽혀진 여기를 치워야 하는 존재도 있어야 함도 깨달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내게 남겨진 유일한 진실은 내가 가끔 울었다는 사실뿐이라고 뮈쎄는 그랬다. 어쩌면 가끔 웃기도 했을 게다. 하지만 오래도록 열망했지만 결국 생의 어떤 부분도 지우개로 지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생보다 진한 지우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결국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렇게 오늘 일기를 마무리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 오늘도 조용한 하루였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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